예전에 다니던 구멍가게나 작은 슈퍼마켓에서는 가게 주인과 손님이 서로를 대략이라도 알았다. 그래서 물건을 사는 것 외에도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워낙 큰 가게들이 많이 생기다 보니 그런 유대감이 사라졌다. 일렬로 죽 늘어서 있는 계산원들의 얼굴을 익힐 틈도, 그럴 마음도 없이, 그저 내가 선 줄의 계산이 빨리 진행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내 차례가 되어도 계산원과 눈을 마주치는 일 없이 계산이 잘 진행되는지, 돈 또는 신용카드를 넘겨주고 영수증을 받을 때를 기다린다.

그런데 처음으로 슈퍼마켓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슈퍼마켓엔 어쭈구리들이 산다> (2011, 사이먼 파크 지음, 이덴슬리벨 펴냄) 덕분이다. 그것도 20년간 영국 국교회의 신부였다가 믿음의 부재로 사제직을 그만두고 슈퍼마켓 점원이 된 경력을 가진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서다.

그가 3년간 근무한 이 슈퍼마켓은 일반 슈퍼마켓과 대형 마트의 중간쯤 되는 SSM(Super supermarket)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 책에는 본사의 정직원인 매니저와 부매니저, 비정규직인 점원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들에 대처하는 방식과 행동이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이 가게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그 안의 구성원은 출신 국가와 인종, 사회적 계급 등이 꽤 다양하다. 기독교인이며 나이지리아 출신인 페이스, 평생 자신의 진가를 인정받지 못했다고 느끼기 때문에 항상 분노한 상태인 윈스턴, 풀타임으로 여자들을 관찰하는 캐스파, 방글라데시 태생이며 영국에서 지금은 비록 최소한의 보수를 받고 있지만 더 나은 자리를 꿈꾸는 모하메드 등이 저자의 동료이다. 이들은 비정규직이라는 자신들의 약한 위치 때문에 매장 노동조합을 결성하였고, 저자가 위원장으로 추대된다. 이들에 더해 자신에게 필요한 말만 하고 거짓말을 일삼기 때문에 피노키오라고 불리는 매니저와 있으나 마나 한 부매니저 등 '사'측 인물들이 있고, 의미 없는 분노를 매장에서 폭발시키는 손님 등이 있어서 슈퍼마켓의 일상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표면적인 분주함과 내적인 성찰이 섞여 있기 때문에, 이야기는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지극히 성스러운 사제에서 지극히 세속적인 슈퍼마켓 점원으로 변신한 그 질곡의 폭과 깊이,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녹아 있기 때문에, 저자가 그려 낸 슈퍼마켓 어쭈구리들은 입체적이고 생생하다. 우리나라와는 꽤 다를 거라 생각되는 그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현재 영국의 일부분을 본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슈퍼마켓에 가면 거기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올 듯하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