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평 원룸에 살다가 25평 아파트로 이사 왔는데, 전에 살던 집에 비해 꽤 넓어 보였던 아파트가 잡동사니로 꽉 차는 데는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원룸에서 쓰던 살림에 더해서 장롱, 책장, 책상, 침대가 합류했고, 책은 늘어나기만 했다. 전체적으로도 지저분한데 딸내미 방은 더 지저분해서, 오십 보 백 보이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덜 지저분한 나와 더 지저분한 딸 사이에 요즘 전쟁이 심각하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도움을 얻고자 고른 책이 <거의 모든 것의 정리법> (2014, 저스틴 클로스키 지음, 처음북스 펴냄)이다. '거의 모든 것의 정리법'이라니, 제목만 들어도 마음이 끌린다. TV나 잡지에 나오는 집처럼 바닥에 굴러다니는 것 없이, 수납은 수납대로, 장식은 장식대로 하며 살 수 있을까?

 

<거의 모든 것의 정리법> 저자의 소개에서 눈에 띈 것은 '강박장애' 병력이었다. 본문을 시작하기 전 '들어가며'에 그의 어린 시절이 나와 있다. 방충망에 뚫린 구멍의 숫자를 세던 일곱 살, '노란 형광색 부분이 완벽한 중앙에 오도록 밑줄을 그었'(24쪽)던 시절, 섹스 중독에 빠져 오랫동안 허우적거린 젊은 날. 그는 이런 강박장애(Obsessive Compulsive Disorder)를 긍정적인 면으로 발전시킴으로써 OCD(Organization, Creation and Discipline) 정리법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렇게 30쪽 가까이에 걸쳐 자신의 삶, OCD 정리법의 생성과 핵심을 보여준 저자는, 47쪽부터 본격적으로 '거의 모든 것의 정리법'을 알려준다. 봉제 인형을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크기순으로 정리한 저자의 성격처럼, 이 책의 항목은 '가나다'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가' 안에서도 '가구'에서 시작해서 '기저귀 가방'으로 끝난다.

 

핵심은 간단하다. 여러 기능을 가진 물건을 살 것, 오랫동안 쓰지 않는 것은 팔거나 기부할 것, 문서와 사진 등은 스캔하고 파일로 만들어 체계적으로 보관함으로써 물리적 공간을 줄이고 검색을 쉽게 할 것, 정기적으로 다시 돌아보아서 쓸모없어진 것을 버릴 것, 쓰고 나서는 제자리에 놓을 것.

저자는 기저귀 가방, 레코드판, 수집품, 옷 같은 물리적 물품과 공간 같은 것뿐 아니라 '온라인 뱅킹, 책임, 재정 관리'처럼 형태가 없는 행동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한다. 과연 '정리, 창조, 원칙'이라는 OCD 정리법으로 성공할 만하다고 인정한다.

 

책을 덮고 집 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꽉 차 있지만 막상 먹을 것이 없는 냉장고며, 베란다에서 몇 년째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바라본다. 올 추석 연휴에는 별다른 일이 없으니, 우선 눈에 보이는 것부터 차근차근 정리해야겠다. 그렇게 정리하고 공간을 창조하고 원칙에 따라 후속 생활을 한다면 딸내미와 내 오랜 싸움이 마침내 끝날 것이다.

아, 그래서 이 책이 '가정/생활'이 아니라 '성공/처세'로 분류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