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수염과 콧수염을 탐스럽게 기른 이가 하얀 원피스형 로브를 입고 줄로 허리띠를 했다. 왼손에 성경책을 들고 있고 발치에는 어린 양이 있는 것은 그런 대로 자연스럽지만, 오른손에는 스타벅스 커피잔을 들고 발에는 샌들을 신었다?

뭔가 언밸런스한 이 장면은, '발칙한 뉴요커' A. J. 제이콥스가 '13개월 동안 참 신앙인으로 거듭난 기록'이라는 상황을 다룬 <(미친 척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권> (2008, A. J. 제이콥스 지음, 세종서적 펴냄)의 유월절 모습이다.

저자는 몇 년 전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읽고 책을 냈고, 다음 프로젝트로 성경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는 것을 택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뒤를 이을 책으로는 성경만 한 것이 없어서, 영적 세계로 들어가는 통행증으로 삼기 위해서, '성경문자주의'라는 심오하고 흥미로운 주제를 탐험해볼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어서 그는 이 프로젝트를 택했다고 설명한다.

유대인으로 태어났으나 그리 종교적이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저자는 여러 교파의 성직자들에게 자문을 구해 가며 1년에 걸친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시작한다. 성경에는 예상보다 구체적이고 사소해 보이는 규율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수염을 깎지 말고 가장자리를 다듬지 말라는 구절 때문에 저자는 점점 더 길고 풍성한 털들로 뒤덮이게 된다. 생리 중인 여자는 부정하니 접촉을 금하라는 구절 때문에 아내와도 다른 침대를 쓰고 휴대용 의자를 들고 다니게 된다.

십계명과 같은 거대한 교리들에 대해 하나씩 탐구하며 생활에 실천하고, 여러 종교 단체들을 탐방하면서 그들의 종교관에 대해 깊이 있게 들어보고 체험도 한다. 아주 엄격하게 성경 구절 그대로를 실천하고자 하면서도 그 배경에 있는 목적과 의도들을 끊임없이 탐구하고자 한 저자는, 성경이 '거룩한 뭔가의 순간포착'일 수도 있고, 단어가 아니라 성경이라는 '숲'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고 깨닫는다.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시종일관 유지되는 가운데, 불가지론자였던 저자가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은 참 보기 좋았다. '인간 내면의 의견은 겉으로 표출되는 행동과 조화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바뀐다'는 뜻의 인식의 부조화는, 저자의 삶에서 훌륭하게 증명되었으니, 1년이 지난 후에도 그의 몸과 마음의 변화는 계속될 것으로 기대한다.

나는 기독교계열의 중학교를 다녔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성경 과목은 1주일에 2시간, 반마다 종교부장을 두어 반별 예배도 드렸다. 게다가 일요일에는 학교 재단에 소속된 교회에서 선생님들과 눈도장을 찍고 주보를 가져다 제출해야 했다.

그런 덕분에 어렴풋하게나마 성경을 읽어볼 기회가 있었다. 하나님이 6일에 걸쳐 세상을 창조하고 7일째에는 쉬신 것에서부터 누구의 아들 누구로 이어지는 지루한 가계도, 이적이 벌어지는 장면들은 나름대로 머리가 굵어진 내게는 그리 다가오지 않았고, 처녀 잉태로 시작하여 33살로 끝난 예수님의 짧은 생애에서도 많은 것을 배우지 못했다. 또 하나의 교과 과목으로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였다면 지금이라도 믿음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A. J. 제이콥스의 (미친 척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년을 통해 참 다양한 공간과 교파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다음 프로젝트라고 하는 건강에 관한 1년도 기대하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