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1박 2일로 짧게 떠난 여름 휴가의 첫 목적지는 남원이었다. 맛있게 한다는 추어탕 집을 찾아가던 길에 광한루를 중심으로 조성된 춘향테마파크을 만났지만, 시간 때문에 아쉽게도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전남 장성에는 홍길동테마파크도 있다고 하니, 허구의 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느껴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뜬금없이 작년 여름휴가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수광 작가의 <그리워하다 죽으리>(2011, 이수광 지음, 창해 펴냄)를 읽는 내내 <춘향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귀가하던 열여섯 살의 소녀 연화를 우연히 만나 장난 삼아 따라가던 약관의 소년 김려는, 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연화의 쓰개치마가 날려 눈이 마주친 순간 사랑에 빠져버린다. 성춘향과 이몽룡이 단오절날 그네를 뛰다가 서로를 눈여겨보게 된 것처럼.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비밀리에 함께 살게 되지만, 관기 출신인 연화와 양반집 선비인 김려의 사랑은 용인될 수 없었고, 연화는 고향을 쫓겨난다. 운명의 장난 때문에 김려가 연화의 고향으로 귀양을 가게 되면서 십여 년 만에 다시 만났으나, 4년 후 다른 곳으로 유배를 떠나면서 이들은 또다시 헤어져야만 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죽음을 불러온다.

<춘향전>의 춘향은 같은 관기 출신이지만 이몽룡이 어사 출도로 돌아오면서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그리워하다 죽으리>는 제목에서 이미 나타나듯 전혀 해피엔딩이 아니다. 신분의 벽은 너무나도 높고, 정조에서 순조로 이어지는 조선의 마지막은 당쟁과 종교, 탐학이 더해져 혼탁하기만 하다. 
그런 회오리에 휘말린 김려를 끝까지 사랑하고 기다리는, 그래서 '그리워하다 죽'는 연화의 모습은 안타깝고 아프다. 호랑이에게 겁 먹지 않고 화살을 날릴 순발력, 무관과 겨루어 활쏘기와 칼싸움에서 이길 정도의 배짱, 허난설헌이나 위강에 비교될 만한 문장력을 갖춘 연화는, 단지 관아에 속한 기생이라는 미천한 출신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그 재주가 죽음으로 몰고 갔으니, 오히려 그녀에게는 해가 되었다고 할까. 

김려와 연화의 시점을 번갈아 가며 이십 년에 걸친 이들의 인연을 풀어내는 이 이야기는 삶보다 사랑을 택한 이들의 먹먹한 사랑 이야기이다. 사랑한 시간을 통틀어 보면 5년도 채 되지 않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으니 '그리운 사람이 살아 있어야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보람이 있다'(239쪽)라는 구절에서 절절이 배어난다.

묻노니 그대는 무엇을 그리워하는가
나는 북쪽 바닷가 미인을 그리워한다네

問汝何所思
所思北海湄

로 시작되는 일련의 시들을 통해 연화에 대한 사랑을 절절하게 노래한 김려의 시집 <사유악부>를 통해 연화와 김려는 언제까지나 살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