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다닐 때 친한 친구가 있다. 우리 과는 대학 졸업만으로는 전공을 살릴 수 없는 특성 때문에, 많은 이들이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유학을 가고, 다른 과로 다시 편입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중에서 나는 전공을 살리지 않고 그냥 취직을 한 경우였고, 내 친한 친구도 그랬다. 특이하게도 꽤 유명한 제과 회사에 들어가서 회사에서 지원하는 제빵학원에 다닌다고 했던 그 친구는, 어느날 회사를 그만두고 수능을 준비하더니 홍익대 교대에 들어갔다는 연락을 보내 왔다. 그때 우리는 30살이 가까운 나이였으니 이제 시작해서 언제 졸업하고 언제 선생님이 될까 지켜보는 나부터 막막했지만, 그 친구는 지금 중견 선생님이 되어 있다. 늦다고 생각할 때 나도 바꾸었어야 하는데, 안정된 직장이라는 편안함에 빠져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는 내 모습이 참 한심하기도 하다.
어쨌든 뒤늦게 대학을 들어간 친구를 축하하기 위해 홍대에 가 보았다. 우리가 함께 학창시절을 보내던 대학은 당시만 해도 막걸리로 대표되는 그런 텁텁함이 주였는데, 이 학교는 전혀 달랐다. 당시만 해도 낯설던 바와 카페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는 이곳은, 학생들이 이용하기에는 너무 고급스러워 보였고 학생운동의 순수함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어 보였다. 대학가에서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생다움보다는 퇴폐적이고 부르주아적이라는 느낌이 강해서, 그 다양함과 역동성에 점수를 줄 수 없었다. 

그런 약간의 거부감은 내가 학생보다 직장인의 위치에 어울리도록 나이를 먹었을 때에야 사라지면서 홍대앞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고, <홍대앞 뒷골목> (2009, 양소영 지음, 그리고책 펴냄)에서 그런 홍대앞 뒷골목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경험할 수 있었다. 그 좁디좁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각양각색의 분위기와 요리와 이야기들이, 칼라풀한 사진들과 함께 강렬하게 인식되었다. 최루탄 냄새 풀풀 풍기는 몸으로 소주와 막걸리와 파전을 먹던 대학 시절에서 벗어나 이제는 이런 것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참 생소하면서도 흥미롭다.
이제는 나이를 먹고 가정이 생기고 아이가 있어서, 홀가분하게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것을 먹으며 수다를 떨 여유가 없어졌지만 눈과 머리로나마 즐기니 참 좋다. 더구나 이 책에 소개된 곳들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 아닌가. 찾을 수 없는 친구들을 아쉬워할 것이 아니라 남편과 아이와 함께 들러도 좋을 가게들 몇 곳을 마음 속으로 찜해 두었으니, 언젠가 화창한 가을날 맘 먹고 서울 나들이를 떠나보아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홍대 앞 다양성이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