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안렌즈를 통해 어떤 대상을 보면 가운데는 존재감을 더한듯 볼록하고 가장자리는 잔뜩 왜곡되어, 마치 어항 속에 들어앉은 듯한 느낌을 준다. <지구 위의 작업실> (2009, 김갑수 지음, 푸른숲 펴냄)의 표지를 보던 순간 정말 파도조차 치지 않는 고요한 어항 속, 그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어항 속 세상은 지구에서도 둥실 떠올라 우주에 자리잡고 있으니, 지구에 앉아 'THE'만 찍힌 타자기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이와 비교해 본다면, 오디오와 커피, 포인트 조명에 둘러싸인 저자는 어찌나 여유로워 보이는지. 이 표지만 잘 관찰해 보면 이 책의 내용과 분위기의 80% 이상을 알아챌 수 있겠다. 

시인이자 문화평론가인 저자는 그간 전전했던 여러 작업실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마포에 꿈의 작업실 '줄라이홀'을 마련했단다. 줄라이홀을 준비하는 이야기에서 젊은 시절의 일화들이 술술 풀려나오면서, 그에게 줄라이홀이 가지는 의미와 보람과 열정을 말한다. 
그런 다음은 줄라이홀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한 커피질과 오디오질의 차례다. 그는 '늙어도 늙지 않는 징글징글한 질병'이라고 자신의 음반 수집과 오디오 기기 사들이기를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그런 절제없음과 욕심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절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그는 그것을 '영원한 젊음'이라고 말한다. 그의 자신만만한 입담을 읽다 보면 그런 모습이 이해가 되는 것과 동시에 무엇인가에 빠질 정도의 열정을 가진 그가 은근히 부러워지기 시작한다. 
커피와 클래식, 오디오에 대해서는 아무리 설명을 해 주어도 막입, 막귀인 내게는 다 똑같을 뿐이다. 향기로운 생두의 품종을 추천해 주셔도, 서양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들려 주셔도, 오디오 기기의 구성과 기능을 말씀해 주셔도 나는 모른다. 그렇지만 그 서술 대상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글귀마다 들어 있어서 흥미를 잃을 수도 없다. 다만 홀린 듯 따라갈 뿐.

지금 창밖에는 천둥 번개가 요란하다. 딸내미는 무섭다며 곁을 파고든다. 
아무리 천둥 번개가 요란해도 줄라이홀은 여전히 고요하고 커피 향 가득하고 클래식 음악이 울리고 있을 것이다. 삶의 통속성과 절박함이 모두 사라진 듯한 공간, 줄라이홀에서 나는 오늘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