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진급 누락을 거쳐 드디어 작년에 과장으로 승진했다. 우리 회사는 과장 직급까지는 진급할 때마다 회사의 규칙과 제품, 회계와 경영, 영어 과목에 대해 필기시험을 치름으로써 어느 정도 객관적인 판단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인사고과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시험은 단지 진급 자격을 위한 필요 조건일 뿐 충분 조건은 아니다. 과장 이후로는 논문 제출과 정성적인 평가가 전부이니, 그때가 되면 성과 관리 뿐만 아니라 사람 관리가 꼭 필요하겠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회사 업무 말고는 승진에 대해 따로 준비를 하지 않았으니,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고 할 수 있겠다. 연구소가 본사와는 떨어져 있어서 회사 전체의 분위기를 알지 못할 뿐더러, 각자 하는 일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한 팀이라는 소속감도 별로 없다.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예전에는 설날에 상사들 댁에 세배도 갔었다는데, 이제는 그런 일이 없이 모두 개인적으로 지낼 뿐이다. 회사와 부서마다 분위기가 모두 다를 것이다.

그래서 승진을 위한 치열한 노력을 그린 <단기속성 승진병법> (2008, 박홍진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을 정말 생소하게 읽었다. 
저자는 승진에 대한 직장인의 의견을 세 가지로 나눈다. 장래를 걱정하면서도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 승진에서 별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 승진을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사람이 바로 그것이다. 학연과 지연, 혈연 등 줄과 백이 없는 비주류 직장인인 이 책의 주인공인 윤 차장은 첫번째 부류였으나 강 부장이라는 멘토를 만남으로써 세번째 부류가 되었고, 계속적인 학습과 치열한 노력을 기울였다. 
전화와 선물로 안면을 트고 정기적인 연락과 관심으로 인맥을 구축하는 것, 금전이 아니라 정성으로 관계를 튼튼히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추운 날씨에 저녁도 먹지 못하고 네 시간 반이나 밖에서 떨다가, 드디어 만난 사람에게 알루미늄 티 하나를 건네고 돌아서는 모습, 휴일도 없이 임원의 개인적인 낚시나 등산에 따라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승진하기 위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갑갑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성의들이 모여 윤 차장은 10 : 1이 넘는 경쟁률을 통과하여 승진했다.
저자는 '고상한 자아실현보다 치열한 자기만족'을 추구하라고 권한다. 윤 차장은 승진을 위해 주말을 반납하고 가족을 희생시켰으나, 치열한 노력 끝에 부장 승진이라는 목표를 이룸으로써 자기 만족을 얻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학연과 지연, 혈연이 승진에 작용하는 중요성은 지금도 여전히 많은 회사에서 통용될 것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은 특히 나이드신 분들에게는 여전히 유효하겠다. 이런 분위기를 뒤집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윤 차장의 모습을 보며, 업무 실력 뿐만 아니라 인맥을 관리하는 능력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인식이 지금에서야 들었으니, 너무 늦기는 했지만 지금이라도 배운 것이 어디랴.
작년에 진급한 후 중간 관리자 교육을 받으면서 강사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승진은 그동안 해 온 일에 대한 회사의 격려와 보상인 동시에 그만큼의 기대라고 말이다. 높아진 직급만큼 실력을 키우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하면서, 윗사람, 옆사람, 아랫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차근차근 인맥을 넓혀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