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가린 한 사람, 귀를 막은 한 사람, 눈을 가린 한 사람, 이렇게 셋이 서로 다른 방향을 보면서 서 있다. 입체파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사람들의 이미지, 저 멀리로 빌딩 숲이 보이지만 이들이 서 있는 쪽에는 붉은 바닥에 연두색 건축물이 뾰족하게 날선 모서리를 앞으로 향하고 있다.

<언어 없는 생활> (2008, 둥시 지음, 은행나무 펴냄)의 이 표지를 보면서, 나는 뜬금없이 우리나라 며느리의 '눈 멀어 3년, 귀 먹어 3년, 벙어리 3년'이라는 속담을 떠올렸었다. 자신의 뜻을 표시하지 못하고 다른 이들이 하라는 대로 따라야만 했던 예전 며느리들의 생활이 얼마나 암담했을까 하는 생각까지, 많은 생각을 이어갔다.

그러나 '언어 없는 생활'에 나오는 이들은 정신적인 장님, 귀머거리, 벙어리가 아니라 실제로 장애인들이다. 귀가 들리지 않는 아들 왕자콴, 벌에 쏘여 장님이 된 아버지 왕라오빙, 붓을 팔러 다니는 미모의 벙어리 여인 차이위전. 그들은 장애 때문에 신체 기능이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고 이용당하지만, 스스로를 지키면서 서로를 도우며 살아간다. 어떻게 그렇게 모이게 되었는지 갑갑하기까지 한 이들은 서로의 눈과 입, 귀가 되지만 정상인들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서로에게 고립된다.

왕자콴과 차이위전의 아들이면서 신체가 정상적인 왕셩리는, 모든 것을 극복하고 당당하게 살아주기를 바라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지은 승리勝利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족을 욕하는 노래가사에 충격을 받아 눈, 귀, 입을 닫아 버리고 만다.

'언어 없는 생활'은 <소설선간> 우수작품상과 노신문학상 중편소설 부문을 수상하고 영화로 제작되는 등 많은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에 다양한 인간상과 더불어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현실을 담았기 때문일까. 휴머니즘보다는 실리가 우선되는 세상에서 언어는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함께 실려 있는 '느리게 성장하기', '살인자의 동굴', '음란한 마을', '시선을 멀리 던지다'도 음행과 게으름, 속임수와 불신 등이 등장하는 씁쓸한 내용들이라서,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각박하고 심란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번번이 그 기대가 무너지고 마는 암담함, 현실에서 많이 만나는 것들을 소설에서까지 보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중국 현대문학의 기수인 '신생대 작가 그룹'의 대표 작가라는 둥시의 작품들은, 현상을 따뜻하게 다루었던 위화와는 많이 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그런 느낌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