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의 유전자> (2008, 뤽 뷔르긴 지음, 도솔 펴냄)는 '농약 없이 풍작을 이루는 기술과 이를 둘러싼 음모'라는 부제를 달고, '태고의 유전자'와 관련된 실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스위스의 거대 제약업체인 치바가이기 그룹의 연구원인 구이도 에프너 박사와 하인츠 쉬르히 연구원은 1980년대 중반에 정전기장을 가지고 일련의 실험을 실시했다. 전압이 존재하되 전류는 흐르지 않는 정전기장에 포자나 씨, 배아, 생물체를 넣어 일정 시간을 보낸 후 정상적인 생장 환경에 옮겨 기르는 것이다.

실험 결과는 경이로웠다. 포자나 씨, 배아는 지금까지 침묵했던 원형의 유전자가 활성화된 것처럼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자라나면서 발아와 생장 속도도 기존의 것에 비해 더 촉진되었고, 이미 생장하고 있던 생물체는 스트레스에 강해지고 생장 속도도 빨라졌다. 예를 들어 고사리의 일종인 '관중'은 그의 조상 격인 '골고사리'로 바뀌었고 유전자의 수도 36개에서 41개로 증가했다. 호염성 박테리아에 정전기장을 처리하자 평상적인 조건에서 로돕신을 생산했고, 2억 년 전의 소금층에서 발견된 박테리아에 정전기장을 가하자 다시 활발하게 성장, 번식하였다. 겨울밀은 정상적인 생장 기간이 7개월인데 8주 만에 수확할 수 있었고, 무지개 송어는 처리를 거친 것이 기존에 비해 부화율과 생존율이 높고 성장 속도가 빠르며 성체가 되면 기존보다 1/3 정도 더 크고 무거웠다.

그러나 이런 실험은 특허를 취득하고 나서 실용화되지 않고 사장되었다. 치바가이기와 산도츠 그룹이 합병하여 노바티스 그룹이 탄생하면서 유야무야 넘어간 것일 수도 있지만, 저자는 농약이 필요없을 정도로 빨리 자라나는 식물들이 보급될 경우 농약을 취급하던 치바가이기 회사의 이익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여 의도적으로 사장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구이도 에프너 박사의 아들들이 주축이 되어 아프리카의 저개발국가인 부르키나파소에서 재배 실험을 거쳐 아프리카의 자력갱생을 돕고자 하는 시도를 소개한다. 

거대 곡물회사들과 농약 제조 회사들은 최첨단 기술을 활용하여 유전자 조작 생물체(GMO)를 만들고 보급하고 있다. 제초제에 내성을 가진 품종, 쉽게 물러지지 않아서 보존기간을 늘린 품종, 영양학적 성분을 강화한 품종 들은 조직적인 비호 아래 그 비율을 높이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에 두부 제조로 수입되는 콩, 가축 사료로 수입되는 옥수수의 과반수가 GMO일 정도로 흔해졌다. 게다가 거대 회사들은 씨앗을 독점 공급할 뿐만 아니라 수확물을 싸게 수매하고 대규모로 저장했다가 흉년에 비싸게 판매함으로써, 식량 수입국들의 목을 죄는 무기로 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발아율과 성장율이 높고 재배 기간이 짧으며 수확도 몇 배 늘리는 방법이 있다면 세계의 식량 문제는 획기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식량은 국가 권력과도 관계가 있는 복합적인 문제라서 가장 좋은 것이 적용되리라는 희망적인 기대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정전기장 처리로 인해 다시 발현한 태고의 유전자는 세대가 지나면서 사라지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씨앗을 공급할 필요가 있고, 또다른 버전의 GMO처럼 독점화할 우려도 있다. 그러나 부르키나파소에서 실시되는 실험의 의도를 볼 때 지금처럼 순수한 인류애로 실시된다면 그런 우려는 접어도 될 듯하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실험과 연구와 장기간의 실제 재배와 안전성, 위험성 등의 분석을 거쳐 완벽하게 표준화된다면 새로운 산업 혁명으로 태어날 수도 있겠다. 앞으로의 실험 결과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