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와 나는 딱 30살 차이가 난다. 우리 사회는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엄마와 나의 성장 과정은 물론이고, 나와 내 딸의 성장 과정에도 많은 차이가 있다. 고여 있는 물처럼 변화가 없는 시대에 살았더라면 내가 성장하던 때의 기억을 더듬어 아이를 키울 수도 있으련만, 이제는 아이는 물론이고 나도 처음 접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니 함께 길을 잃고 헤매기가 일쑤다.

 

'딸이 집을 나갔다.'라는 막막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17세> (2012, 이근미 지음, 미래인 펴냄)는 30살의 차이가 나는 딸 다혜와 엄마 무경이 만드는 소통을, 엄마의 시점에서 풀어 나가는 이야기이다.

보통의 엄마와 딸은 가장 가까운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무경과 다혜의 상황은 좀 다르다. 남편이 새로운 여자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오면서 무경은 집을 나오고, 아이는 아빠가 키웠다. 그러나 사업이 안 되어 알코올 중독에 빠졌던 남편이 결국 사망하면서 아이는 10여 년 만에 무경에게 돌아오고, 6년의 시간이 지난 후 아이는 '저, 가출합니다'라는 말을 컴퓨터 모니터 화면보호기에 띄워 놓은 채 집을 나간 것이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함께 살아가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아이가 11살까지 떨어져 지내다가 다시 만난 후에도 양품점 일 때문에 바빴던 터라 6년이라는 시간은 그들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가뜩이나 처음부터 떨어지지 않았던 모녀 사이라도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거리가 벌어지기 쉬운데, 아빠의 알코올 중독과 새엄마의 질시 때문에 고생을 한 아이는 조숙했기에 더욱 그랬다.

아이가 가출한 뒤 행방을 수소문하거나 가출 신고를 하는 대신 무경은 아이 메일주소로 30년 전 자신의 이야기, 아이와 똑같이 17살에 집을 나갔던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가정 환경과 성장 배경은 다르지만 앞날에 대한 부담과 꼬인 상황 때문에 집을 나갔다 돌아온 무경은 공장에 취직해서 어른들의 세계를 겪으면서 '안분지족의 달콤함'(226쪽)에 빠진다. 그러나 공장에서 만난 형묵, 중학교 동창 하영, 유학을 떠난 나양, 노동조합 설립을 도모하는 이강우 등 꿈을 놓지 않는 이들을 통해 다시 꿈을 찾는다.

 

세상에는 차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다는 걸 환기하면서. 그리고 그 차선이 최선보다 나을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건 자신이 생각하는 정상에 서는 것이다. 이강우 씨가 말했던 그 정상. 내가 좋아하고 마음 편한 그곳이 정상인 것을. (342쪽)

돌아보면 내 17살은 학교 공부 외에는 별다른 고민이나 어려움이 없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꿈도 없었다. 대학 다니고 우연한 계기로 회사에 들어가서도 꿈이 없었고, 맞닥뜨린 도전이 꺾이자 금세 꿈을 접은 채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안분지족의 달콤함'에 빠져 십여 년을 보냈다. 이제서야 꿈을 이루고자 생애 첫 '가출'을 시도하고도 그것이 바른 길인지 흔들리고 있는데, <17세>는 그런 내게 '차선이 최선보다 나을 수 있다'고 토닥인다. 엄마로서 책을 읽기 시작한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았으니, 이 책은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모양이다.

내 욕심 때문에 아이를 다그치지도, 내 기준에 따라 아이를 판단하지도 말아야겠다. 나부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 주고, 마음을 열어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 꼭 필요한 시기를 놓치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