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왔다. 이번 주 일요일에 모 대형 마트가 휴점하니 그 전에 즐기라는 내용이었다. 대형 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동네 상권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그 규제의 일환으로 짝수 주 일요일 휴점과 심야시간대 영업 금지 등이 채택되었고, 이번 주 일요일인 오늘이 그 첫 번째 휴점일이었다. 대형 마트는 백화점에서 쇼핑할 만한 형편이 되지 않는 이들에게 대안이 되기도 하기에, 이번 규제는 빈익빈 부익부의 소비주의에 대한 첫 번째 브레이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침 내가 이번에 읽은 책이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2012, 에밀 졸라 지음, 시공사 펴냄)이니, 이 이야기는 150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지금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1, 2>은 에밀 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 20권 중 11번째로 쓰인 글이며, 총서의 제목인 루공 집안과 마카르 집안이 마침내 결혼으로 연결되어 낳은 '옥타브 무레'가 등장하는 책이다. 옥타브 무레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을 세우고 키운 장본인으로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그러나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의 주인공은 시골에서 올라와 이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 점원으로 취직한 아가씨 드니즈 보뒤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동생들을 데리고 파리에서 직물점을 하는 큰아버지 댁에 의탁하러 왔지만, 불행하게도 큰아버지 가게 앞에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 세워져서 손님들을 뺏기는 바람에 형편이 말이 아니다. 동생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드니즈는 파리에 올라온 첫날 마음을 사로잡은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 취직하게 된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 투자를 유치하고 규모를 불리며 승승장구하는 것과 더불어 주변 상권은 죽어가고, 백화점과 전통 상권 사이에 존재하는 드니즈는 백화점이 대표하는 세태의 변화를 이해하며 전통 상권에 대해 변화의 수용을 권고하는 중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마침내 변화의 중심에 서게 된다.

 

1883년에 출간된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은 1864~1869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저자는 의도적으로 후대의 산물들을 이야기 안에 넣음으로써 백화점의 휘황함과 풍성함을 극대화하고 있다. 기성복이 주류를 이루는 지금과 다르게 당시의 파리는 옷감을 사서 옷을 맞추는 방식이 대세였다. 백화점 사장인 무레를 따라 1층부터 3층까지 각 매장들을 순시하다 보면 실크, 새틴, 벨벳, 파유, 태피터, 서지, 캘리코 같은 다양한 천의 종류에 따른 온갖 질감과 색깔들에 취하게 된다. 레이스만 하더라도 '숨결처럼 가벼운 에스파냐산 블롱드 레이스, 섬세한 망사에 커다란 꽃무늬가 수놓인 브뤼셀의 아플리케, 좀 더 점잖은 디자인의 니들 포인트 레이스와 베네치아산 레이스, 그리고 장엄하고 경건하기까지 한 화려함으로 빛나는 알랑송 레이스와 브루게 레이스'처럼 세세하다. 내가 이 천과 무늬들을 알았다면 그 화려함이 배가되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지금은 백화점 운영의 기본이 된 매대 유인, 바겐세일, 인테리어, 광고, 휴식 공간, 요즘은 홈쇼핑이나 인터넷 쇼핑몰로 바뀐 통신 판매 같은 것들이 당시에는 아주 새로운 시도로 도입됨을 바라보는 것도 흥미롭다.

 

'백화점은 불안정한 열정의 유용한 배출구이자, 신과 남편이 지속적으로 싸워야 하는 곳이며, 아름다움의 신이 존재하는 내세에 대한 믿음과 육체에 대한 숭배가 끊임없이 다시 생겨나는 곳'(2권 323쪽)으로서 '중요한 건 여인들의 욕망에 불을 지펴야 하는 것'(1권 71쪽)이라는 백화점 사장의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통용되는 보편적인 모습이다.

물건을 파는 여인인 드니즈, 물건을 사는 여인인 데포르주 부인은 신분이며 지위, 성품이 반대인데, 무레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여 그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저자는 드니즈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수동적으로 의존하는 '신데렐라'가 아니라 생활력과 포용력을 가진 여인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보아도 되겠다. 근대와 현대의 사이에서 소비주의가 성장하는 현장을 흥미롭게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이름도 적나라한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서 과연 여인들은 행복했을까. 여인들의 욕망과 갈증을 먹고 사는 백화점은 그때보다 더 강대해져 여전히 건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