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고향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유일한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탓하지 말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는 고작 10만, 백성으로는 어린아이와 노인까지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 게 없다고, 힘이 약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항상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칭기스칸이 되었다.

 

위의 글은 '칭기스칸이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꽤 유명한데, 길고 짧은 여러 버전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칭기스칸이 쓴 글은 아님을 알게 된 것은 예전, 회사에 다니던 시절 사이버교육 과정 중 '칭기스칸의 리더십 혁명 - 디지털 노마드' 과정을 통해서였다. 그 과정의 강사인 전 신문기자이며 몽골 정부에서 친선훈장을 받은 김종래 님이 <밀레니엄맨> (1998, 해냄 펴냄)에서 이 편지글을 창작한 것이었다.

칭기스칸이 세운 몽골 제국이 원나라를 세우고 고려 때 우리나라를 짓밟은 역사적 사실 때문에 한때는 칭기스칸에 대해 반감을 가지기도 했으나, 이제는 리더십이라는 면에서 칭기스칸을 다시 보는 기회가 늘고 있다. 방금 이야기한 '칭기스칸의 리더십 혁명' 교육 과정에서는 개인의 역량(상상력과 열정, 당당하게 홀로 서는 낙관론, 인간에 대한 이해, 순리를 좇고 역리를 버림), 조직의 비전(편을 가르는 순간 모든 것은 불완전해진다,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구별하라, 분배의 정의가 꿈의 결집이다, 리더의 약속이 수평적 동지 관계를 만든다, 복종자가 아닌 추종자를 만들어라), 조직의 핵심 역량(속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리더는 앉아서도 천 리 밖과 소통한다), 인재 개발 및 양성 (프로마니아가 미래를 지배한다, 5만이 출병하면 10만이 귀환한다, 우마드를 알아야 조직이 숨쉰다), 조직 경영(가장 강한 적은 내부에 있다, 라스트 씬만이 필요하다, 관용과 포옹하고 처벌과 입맞춤하라, 성공신화는 마약이다)의 18가지 강의를 통해 칭기스칸의 리더십에 대해 속속들이 설명하였다. 동영상 강의로 지냏ㅇ되는 사이버 교육의 특성상 나는 저자를 따라 몽골의 게르 안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그들이 옛날에 말을 달렸던 넓디넓은 초원과 사막을 훑어보기도 했다.

그때의 리더십으로서의 학습 내용이 실제 칭기스칸의 삶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간접 체험하게 된 것이 바로 <조드 1, 2> (2012, 김형수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를 통해서였다.

 

합계 7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이야기는 훗날 칭기스칸으로 등극하는 소년 테무진이 아버지 예수게이를 잃고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9살 때로부터 시작된다. 왕족인 아버지가 독살당한 후 친척들은 테무진의 어머니와 동생들을 버렸으며, 이들은 살기 위해 힘을 가져야 했다. 경제력도 권력도 없는 여자와 아이들이니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테무진은 푸른 늑대의 눈과 영혼으로 어려움을 꿋꿋이 헤쳐나가고 진실과 믿음으로 사람들을 모으면서 마침내 '혈통이 아닌 공동체'(2부 277쪽)를 몽골 초원에 건설한다. <조드 1, 2>는 테무진의 일생 30여 년을 따라가며 그 성공의 궤적을 꼼꼼하게 전달한다.

 

우리나라는 아주 예전부터 농경을 하며 정착 생활을 했기 때문에, 몽골의 유목 생활은 참으로 낯설었다. 가뭄과 추위와 폭설로 사람과 가축을 위협하는 '조드'는 중대한 위험 요인이기도 하지만 초원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생명을 제한하는 효과도 있었다. 칭기스칸은 이런 조드를 지혜롭게 넘기고 때로는 전투의 일부로 활용함으로써 마침내 자연의 한계를 넘어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자연의 순리를 벗어나지 않는 한도에서 말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낯선 유목과 말과 가축과 눈보라와 늑대와 하늘을 자세하게 설명함으로써 눈앞에 선명한 현장을 펼쳐놓는다.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 신분을 중시하는 부족 집단을 탈피하고 능력과 신의를 중심으로 한 제국을 이루기까지 몽골의 초원에서 벌어진 이합집산의 현장에서 함께 말을 타고 달린 느낌이다. 그 말에서 내려오니 잠깐 어지럼증이 일 정도로, 나는 이 책에 푹 빠져 있었다.

눈앞에 위험이 닥쳐도 여유와 비전과 믿음과 포용력을 잃지 않았던 칭기스칸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세워진 제국에서 대칸이 되어 통치하는 칭기스칸의 남은 20년도 마저 만나보고 싶어졌다. 각박한 현실을 잊게 하는 선문답 같은 대사들에 감탄하며, 저자의 후속작을 기대하며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