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초> 1, 2 (2008, 김탁환 지음, 민음사 펴냄)의 저자 김탁환 님은, <방각본 살인 사건>, <열녀문의 비밀>, <열하광인>으로 이어지는 '백탑파 시리즈', <리심>과 <나, 황진이> 등의 역사 소설로 우리 역사를 대상으로 한 팩션 계에서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혜초> 1, 2권은, 통일신라 시대의 스님인 혜초가 다섯 천축국을 다녀온 후 기록을 남겨 727년 발간한 <왕오천축국전>을 기반으로 하여 소설로 재구성하고 있다. <왕오천축국전>은 불교, 정세, 지리, 풍속, 언어를 기록한 것으로, 1908년 중국 둔황에서 발견되었고 현재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세계 4대 여행기로 손꼽히는 고전인데, 나는 지금까지 저자와 제목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혜초>를 통해 당시의 오천축과 삶에 대해 알고 싶었다.

이야기는 뜻밖에도 고구려 유민 출신인 당나라 장수 고선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검은 모래폭풍에 휘말려 부하 12명을 모두 잃고 헤매던 고선지는, 일가족의 해골 아래에서 정신을 놓고 있는 승려를 발견한다.

그 다음 대목은 신라의 승려 혜초의 목소리로 진행된다. 여행자이며 수도승이며 신라인이며 무엇보다도 인간인 혜초. 신라에서 출가하여 당나라 광주로 불법을 배우러 왔다가 오천축을 순례하러 떠난 맨발의 여행자.

고선지는 통일신라 건국과 함께 멸망한 고구려 출신이라는 태생적 핸디캡 때문에 누구보다 먼저 출정하고 누구보다 많은 적을 베고 누구보다 더 많은 글을 읽어서 당나라 안서도호부 유격대장이라는 높은 지위에 올라왔다.

혜초는 통일신라 출신으로 화랑이 되었으나, 전쟁터에서 맞닥뜨린 죽음에 겁을 먹어서 뒷걸음질치고 만다.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전투에서 선봉을 자청하고, 그 전투에서 왼쪽 눈에 화살을 맞아 죽는다. 그리하여 혜초는 출가하고 부처님의 법을 배운다. 한곳, 한집, 한 나라, 한 계율에 머물지 않고 천하를 내 집 마당처럼 만유하는 삶 (32쪽), 혜초는 떠남이 좋아 불제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거기에다 신비로운 존재인 청록색 눈동자의 호희 '오름'이 있다. 공에 올라가 빙빙 도는 춤인 호선무 무용수이자, 공중 소리를 날릴 줄 아는 오름. 그는 고선지와 혜초가 만나기 전에 이미 그 둘을 각자 알고 있었고, 아주 넓고 깊은 시야 위에서 시나리오를 짜는 듯하다.

전혀 공통점이 없는 고선지와 혜초가 엮이게 된 대유사(타클라마칸 사막)을 가운데에 두고, 고선지와 혜초 각각의 행보, 혜초가 여행 중에 적어 두었던 여행기, 기억을 잃고 방황하는 혜초를 이용하는 신라 상인 김란수 들이 번갈아 나오면서 현재와 과거가 뒤섞이는 복잡한 구조이다.

폐사리, 극자이, 건타라, 언기, 토화라 등 생소한 지명들은 1000년도 넘은 오래된 과거를 보여주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과 욕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교의 도반인 각림, 경교 신자였던 야곱의 마지막 모습은 그런 일반적인 사람의 마음과 욕망을 벗어난 경지를 보여준다.

저자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으로 그를 처음 만난다. 복잡한 구조 때문에 시간순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이해하기가 꽤 어려워서, 거침없는 고선지 장군과 겸손한 여행자 혜초의 엮임은 다시 한번 읽어봐야 할 여운을 남긴다. 걸음걸음 목숨을 거신 혜초 스님의 모습처럼 거룩하고 쓰고 싶었다는 저자의 말이 다시 한번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