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이 북부의 승리로 끝나고 노예해방이 이루어진 1880년대. 노예제는 없어졌으나 생계를 유지할 능력과 자유가 없어서 대다수의 유색인들은 여전히 지주들에 묶여 있고, 유색인이 백인에게 말대꾸를 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으며, 유색인이 백인에게 폭력을 휘두를 경우 법에 의지하지 않고도 유색인을 살해해도 용납될 정도로 여전히 어두운 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이런 시대에 백인 아버지와 유색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폴 에드워드 로건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대지여 꿈을 노래하라> 1, 2 (2008, 밀드레드 테일러 지음, 내인생의책 펴냄)이다.

폴은 겉으로 보기에는 백인에 가까울 정도로 하얗기 때문에 '흰 검둥이'로 불린다. 백인 아버지는 당시만 해도 열린 사고의 소유자로서, 노예였던 드보라와의 사이에서 낳은 캐시와 폴을 백인 아들들과 동등하게 교육하고 키운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에서 더이상의 평등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폴이 십대 중반에 들어간 이후로는 백인 아들들과 다르게 대우한다. 폴과 동갑인 로버트는 학교에 다니지만 폴은 목수에게 목공 관련 도제 교육을 받아야 했던 것. 이런 차별에 반발하는 동시에 유색인으로서의 한계를 느낀 폴은, 말 경주에서 얻은 대가를 백인에게 강제로 받아낸 미첼과 함께 고향을 떠나 자립적인 인생을 꾸려 나간다.

벌목장에서 일하기도 하고 테레빈유 캠프에서 일하기도 하는 미첼과 폴은 형제와 같은 신의로 묶여 있으나 많이 다르다. 자유와 즐거움을 추구하는 미첼과 달리 폴은 말과 땅, 가정이라는 안정을 꿈꾼다. 그리고 그 꿈을 향해 차근차근 저축하고 마침내 그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폴의 친구로는 로버트와 미첼 두 사람이 소개된다. 백인 형제이자 동갑이라서 한 몸처럼 붙어 다녔던 로버트는, 백인 친구를 사귀게 되자 형제인 폴을 배신했다. 유색인인 미첼은 폴을 계속 때리고 폴이 아끼던 종마를 다치게 할 정도로 시작은 좋지 않았으나, 결국 삶과 죽음을 건 동지가 되었다.

등장인물을 보면 유색인 아들 딸에 대해 할 수 있는 최대의 것을 해 주었던 아버지, 유색인에 대한 차별이 없이 공정했던 빅스버그의 상점 주인 루크 소여, 인디언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낄 정도로 공정했던 웨이드 제미슨 같이 공정한 백인들도 간혹 있었으나, 애초부터 완전한 남부인이었던 웨이벌리 아이들, 백인처럼 행동한다고 폴을 증오한 테레빈유 캠프의 감독이던 제서프, 닭서리를 빌미로 유색인 사냥을 벌였던 디거 웰러스, 2년간 벌목하면 16만 제곱미터의 땅을 넘겨주기로 했으나 그 약속을 철저히 저버린 필모어 그레인저 등 전형적인 남부 백인이 대부분이었다. 유색인들은 폴 아버지의 마구간지기이자 미첼의 아버지였던 윌리 토머스와, 샘 페리의 가족들 정도로 비중이 적다. 백인보다 약간 짙을 뿐인 피부색 외에는 백인처럼 생각하고 백인처럼 행동했던 폴의 관점 때문이리라.

어떤 사회이든 전환기에 그 전환을 이끌어내는 사람에게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폴이 여러 차례 이야기하는 것처럼, 유색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평범한 유색인이었다면 많은 것을 포기하는 대신 몸은 힘들었겠지만 마음은 편하게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폴은 그런 유색인의 길이 아니라, 생명의 위협은 감수해야 하지만 더 공정하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 오랜 노력을 투자했다.

벌목에서 번 돈을 술집에서 쓰고, 스쳐 지나가는 연애에 마음을 쏟을 뿐 안정을 추구하지 않는 미첼은 당시 유색인들의 표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날을 위해 꿈을 추구하는 폴, 견고한 안정과 사랑을 주는 캐롤린을 만나서야 자리잡게 되는 미첼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그렇게 저항하고자 하는 백인들의 모습이 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뒤에 깔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의사나 변호사, 교사가 되는 대신 넓은 땅을 소유하고자 했던 폴의 마음에도 한계가 있는 듯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말이다.

이제 폴은 160만 제곱미터라는 꿈에 그리던 땅을 마련했으나, 그 이후로도 폴과 캐롤린, 그 아이들의 생활에는 유색인이라는 덫이 오랫동안 무겁게 자리할 것이다. 그 이야기는 <천둥아, 내 외침을 들어라>라는 책에서 폴의 손녀인 캐시 로건의 입으로 들어보기로 하자.

 사회의 주류가 아니라는 것, 출생에서부터 차별받는 그런 모습을 우리도 멀리는 환향녀에서부터 가까이는 한국전쟁 이후의 혼혈아에게 익히 보고 들었다. 이제 농촌에서부터 늘어나는 다문화가정에서도 폴처럼 느끼는 이들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려운 현실에서도 꿈을 노래하는 폴의 모습처럼, 당시의 시대보다는 열린 상황에서 더 꿋꿋하고 힘차게 살아나가기를 기대한다. 아직까지 우리에게 그만큼의 희망은 남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