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말쯤 뜨거운 인기를 모았던 TV 미니시리즈가 있다. <시크릿 가든>이다. 회장의 외손자이자 잘나가는 백화점의 사장인 김주원은 차갑고 도도하고 이기적인 청년이다. 반면 고등학생 때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혼자 힘으로 살아온 스턴트우먼 길라임은 좋아하는 가수에 대해 순정을 다하는 동시에 불의를 참지 못한다. 이 두 사람을 이어주는 것은 오래전 화재 현장에서 김주원을 구하고 사망한 소방관인 길라임의 아버지이다. 우연한 계기로 마주친 이 두 사람은 어떤 술을 마신 후 영혼이 바뀌게 되고, 비가 오는 날 함께 있으면 영혼이 다시 바뀐다. 둘은 이렇게 영혼이 바뀌는 일이 거듭되면서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고, 그토록 차갑고 도도하던 김주원은 액션 신을 찍다가 뇌사 상태에 빠진 길라임에게 자신의 몸을 주기 위해 비 오는 거리로 향한다.

벌써 1년이 지났어도, 아주 상반된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어떻게 사랑을 이룰 것인지 궁금해서 가슴을 졸이며 TV를 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두 사람의 영혼이 바뀐다는 설정은 현실적이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무리한 설정이 없어서 몰입할 만했다.

 

<그녀가 죽길, 바라다> (2011, 정수현 지음, 소담출판사 펴냄)는 또 다른 버전의 '시크릿 가든'이라고 봐도 될까? 단, 이번에는 영혼은 둘이지만 육체는 하나이기 때문에 두 영혼이 서로 경쟁해야 한다.

볼품없는 외모 때문인지 뮤지컬 오디션에서 계속 떨어지기만 하는 윤재희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에 치일 뻔한 아이를 구하고 사고를 당해 뇌사 상태가 된다. 윤재희의 영혼은 몸에서 빠져나와 떠돌다가 어떤 '목소리'가 제안한 것처럼 잠깐 머물 육체를 택하는데, 그것이 바로 재력과 미모를 겸비한 변호사 이민아였다. 자정까지 자신의 육체로 돌아와야 한다는 조건이 주어졌지만, 윤재희는 지금껏 꿈꿀 수도 없었던 미모를 가진 김에 평생의 꿈인 뮤지컬 오디션에 도전하다가 그 시간을 넘기고 만다. 이제 윤재희의 몸은 사라지고 이민아의 몸에 더불어 있을 수밖에 없다. "부탁해"라는 '목소리'의 말만 남아 있을 뿐.

이렇게 두 사람은 한 영혼이 사라지면 다른 영혼이 올라오는 식으로 교대하면서 삶을 살아간다. 어쩔 수 없이 협조 체제를 구축하고 살아가던 중, 자연의 법칙을 거스른 이들에게 죽음이 다시 찾아와 둘 중 하나의 영혼이 죽을 거라고 알려준다. 누가 죽을 것인가?

 

이민아와 윤재희의 영혼 교체를 따라가며 이민아의 과거에 대한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고, 윤재희를 이 상황으로 인도한 '목소리'의 정체도 드러난다. 윤재희가 계속 오디션에 도전하는 뮤지컬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오페라의 여주인공을 사랑한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저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다중 인격자들은 떠도는 영혼들에게 자신의 몸을 빼앗긴 불쌍한 사람이다'라는 한 문장에서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윤재희는 솔직함과 따뜻함, 열정으로 이민아를 변화시켰고, 그를 통해 진실을 마주하고 상처를 치유할 힘을 얻게 했다고 보아도 되겠다. 야망과 사랑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가 나란히 나아가며 많은 이야기를 담아낸 소설이었다. 불꽃 같지만 짧은 인생과 무미건조하지만 긴 인생 중 무엇을 택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을 남긴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