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임금이나 세자가 아내를 맞이할 때가 되면 온 나라에 금혼령을 내려 혼기에 다다른 처녀들이 결혼할 수 없도록 하고, 사주단자를 받은 후 여러 단계의 심사를 거쳐 아내를 맞았다. 이를 '간택'이라고 한다. 세자비나 왕비는 나라의 국모가 될 사람으로서 그 영화가 최고에 이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권력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역풍을 맞을 위험도 커지기 때문에 누구나 반기는 자리는 아니었다. 그것도 궁궐이라는 공간은 온갖 법규와 부자유로 똘똘 뭉친 곳이니 더욱 그렇다.

<채홍> (2011, 김별아 지음, 해냄출판사 펴냄)은 문종이 아직 세자였던 때,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궁에 들어간 순빈 봉씨를 주인공으로 하여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왕비며 왕대비, 대왕대비마저도 성씨만으로 통용될 정도로 여성의 존재감이 부족했으니, '순빈 봉씨'라고만 기록되었을 뿐인 것도 당연하다. 그것도 유교라는 국교 하에서 입에 담기도 곤란한 죄목인 동성애 스캔들 때문에 퇴출을 당했으니 그나마 있었을 기록마저 없애버렸을 수도 있다.

 

저자는 이 이름뿐인 순빈 봉씨를 생생한 여인으로 재구성한다. 그 당시의 여성들보다 조금 더 자유로운 여인으로 그렸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후 아버지와 오빠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여인.

그러나 훗날 문종이 되는 세자는 여자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인지 얼굴이 예쁘지 않았던 전 부인을 멀리했고, 반대로 순빈 봉씨는 너무 예뻐서 멀리했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아내만큼 초라한 존재가 있을까. 그것도 가족이며 친지와 떨어져 혼자 남은 궁궐 안에서 아무에게도 위안을 찾지 못했던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많은 시간을 함께 있을 수 있고 비 오는 밤 한 우산을 쓰고 같이 나란히 걸을 수 있었던 궁녀 '단지'였다.

 

사랑은 인간의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왕비와 세자비라는 특수한 위치에 있는 여인들도 사람이기에 욕망과 희망과 절망이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왕과 세자라는 특수한 위치에 있는 남편 때문에 그 욕망과 희망과 절망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서 희생된 이가 어찌 순빈 봉씨뿐이랴. 투기 때문에 폐서인이 된 폐비 윤씨(연산군의 생모)도 그렇고, 장희빈을 비롯한 온갖 빈과 비 들이 겪은 사랑을 향한 고통을 생생하게 깨닫는 시간이었다. '채홍'이라는 제목이 뜻하는 무지개처럼, 화려하지만 손에 넣을 수 없고 어느새 사라지는 꿈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그 쓸쓸함이 사무쳐서, 등을 토닥이며 위로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