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바티칸시티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린 '천지창조'의 중앙에는 거의 손이 닿을 듯 말 듯 한 아담과 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신이 죽었다> (2011, 론 커리 Jr. 지음, 소담출판사 펴냄)의 표지에는 아담의 손만 나와 있을 뿐 신의 손이 그림자만 남아 있다. 신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딩카족의 젊은 여인으로 변장한 채 수단의 다르푸르 난민촌에 어떤 소년을 찾으러 내려왔다가, 내전 중인 정부군의 공중 폭격에 사망했다. 이 소년을 왜 찾으려 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이, 한없이 고귀하고 신성한 창조주가 육체를 가진 사람과 마찬가지로 죽게 된다니 믿어지는가? 론 커리 Jr.는 '신이 죽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런 당황스러운 설정을 제시한 다음, 창조주의 사망 후 사회에 일어나는 일들을 여덟 편의 이야기에 실었다.

 

각 이야기의 앞장에는 글의 내용과 관련된 성경 구절이 쓰여 있다. 창조주의 죽음으로 세상은 혼란을 겪는다. 믿음으로 삶을 지탱해 온 사람들은 생의 의지를 잃고, 자신의 자리에서 벗어나 사회가 마비된다. 그러나 사람들의 질긴 생명력은 또 다른 신 또는 믿음의 체계를 만들어 냄으로써 또다시 세계를 재건한다. 저자는 여러 이야기들에 다양한 주인공들을 내세움으로써 그런 세계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구성한다. 어떤 것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실적인가 하면, 또 어떤 것-특히 포스트모던 인류학 군과 진화심리학 군의 전쟁 같은 경우-은 상당히 피상적이다. 왜,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싸울 뿐이다. 그러고 보면 종교를 빌미로 전쟁을 벌이는 지금도 마찬가지 아닐까.

 

소설 속에서 신이 죽은 시점은 2006년이다. 우리 사회는 방종과 막무가내로 살고 있고, 아이를 '소황제'처럼 떠받들고 있으며, 믿음이 다르다는 이유로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유일신적 세계관에서의 신은 이미 죽었다고 보아도 될 듯싶다.  

신이 죽었다는 불경한 설정에서 펼쳐지는 이 이야기들에서 현대 사회의 온갖 문제점들을 볼 수 있었으니, 마음 한구석은 불편하지만 흥미로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