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욕은 식욕과 더불어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이다. 현실에서 충족시킬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를 위해 문학과 영화 작품들이 대리충족시키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성욕은 다른 욕망들과는 다르게 충족시키기 위한 제약이 꽤 있다. 내가 아닌 상대가 필요하고, 서로 동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적인 욕망을 문학 작품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가 필화 사건을 겪은 이도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쉬쉬하면서 이야기하는 주제가 되었다.

 

<남의 속도 모르면서> (2011, 김종광, 조헌용, 김도언, 김종은, 김태용, 박상, 은승완, 권정현 지음, 문학사상 펴냄)는 그런 성에 대한 테마 소설이다. '젊은 작가 8인의 아주 특별한 섹스 판타지'라는 설명에맞게 기교하게 비틀어놓은 여자의 얼굴이 판타지스러운 느낌을 더한다. 여기 모인 작가들은 모두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남자 작가들이다. 그동안 다른 책으로 만났던 이도 있고, 내 짧은 독서 이력 때문에 이번 책으로 처음 만나는 작가도 있다.

 

이전에 <죽음의 한일전>으로 만났던 김종광 작가는 '섹스낙서상'이라는 글에서 역시 현실을 희화화한 재미있는 글을 보여준다. 율려국에서 최고액의 상금을 그냥 주는 '섹스낙서상'에 대해 기자가 취재하는 형식으로 해서 낱낱이 알아본다. 생처음, 상많이, 확뚫린, 짱잘봐라는 인물 이름에 웃음이 나온다.

조헌용 작가의 '꼴랑'은 가난한 노인들의 성을 담았다. 비싼 차를 타고 와서 정사를 즐기는 이들을 부러워하며 손수레에 그림을 그려 넣는 모습이 처연하다. 그러나 성적인 교류는 때와 장소가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김도언 작가의 '의자야 넌 어디를 만져주면 좋으니'는 페티시즘을 담았다. 신체의 일부분에 집착하는 것은 들어보았지만, 의자와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는 처음이다. 현실적인 처음에서 시작하여 판타지적인 결말로 이어진다.

김종은 작가의 '흡혈귀'는 실직한 가장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데 흡혈귀라는 존재가 슬쩍 들어온다. 정말 피를 빠는 것인지, 상대의 젊음과 에너지를 빠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김태용 작가의 '육체 혹은 다가오는 것은 수학인가'는 <숨김없이 남김없이>에서 그랬던 것처럼 언어의 해체를 통해 의미를 전달한다. 나는 눈에 들어오는 대로 후루룩 쉽게 읽는 버릇이 있어서, 그 깊이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박상 작가의 '모르겠고'는 일본의 어덜트 비디오 주인공인 아키를 만나 이루어지는 판타지를 그렸다. '그게 현실인지 아닌지는 도대체 모르겠고'라는 마지막 문장에서 이 단편의 제목이 나왔나 보다.

은승완 작가의 '배롱나무 아래에서'는 마침내 우주인이 등장한다. 우주인에게 납치되어 화학적 거세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상담하는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이다. 어쩌면 있을 법하지 않은가.

권정현 작가의 '풀코스'는 친구를 따라 성을 매매하는 업소를 풀로 경험하는 '나'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정작 유일하게 합법적인 성적 대상인 아내와는 잠자리를 함께하지 않는다. 섹스리스 부부임을 선언하는 많은 이들은, 서로에 대한 신비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게다.

 

아무래도 작가들이 모두 남자이다 보니,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조헌용 작가의 글을 예외로 하고는, 모두 남자들의 시선에 맞춘 판타지를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든다. 피를 빠는 것도, 풀코스를 즐기는 것도, 현실적으로 구현된 성적 판타지의 주인공인 아키와 만나는 것도 모두 남자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여성 작가에게는 자유롭지 않은 주제여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율려국과 우주인처럼 환상적인 공간에서, 꼴랑과 풀코스처럼 실제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들의 성적 판타지를 통해 다양한 면의 성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