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TV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책력을 이용하여 일식과 월식을 예견하는 장면이 나왔다. 예전에는 천재지변이나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 경우 왕의 자질 또는 실책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고, 드라마에서 미실은 책력 덕분에 권력을 가질 수 있었다.
천문을 관측하여 정세의 방향을 가늠하는 것, 조류와 기후를 고려하여 출정 일자를 정하는 것 등도 사극에서 흔히 보는 장면이다. 강의 범람, 농사, 이주 등 다양한 생활에서도 필요하지만 달력은 정치 권력 및 종교와 연계되어 강한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마야의 달력> (2011, 베른트 잉그마르 구트베를레트 지음, 열음사 펴냄)은 이런 달력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고 달라졌는지를 먼저 이야기함으로써 달력과 시간에 담긴 의미를 이야기한다. 절대적인 시간은 동일하게 흐를 수 있지만 시간의 단위를 어떻게 나누는가에 따라 용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당장 우리나라 달력만 봐도 태양을 중심으로 한 양력과 달을 중심으로 한 음력이 공존하고 있지 않은가. 

사라진 지 오래된 마야 문명의 달력을 새삼스럽게 궁금해하는 이유는 바로 내년 12월 21일에 닥친다는 지구의 종말과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이 종말의 날짜의 근거가 된 마야의 달력를 추적하기 위해 저자는 마야 문명이 자리 잡았던 메조아메리카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그런 다음 4부부터 본격적으로 마야의 달력과 역법을 설명한다. 20진법, 연월일이 아닌 카툰, 툰, 위날, 킨이라는 생소한 단위, 태양과 달뿐만 아니라 금성의 공전까지 고려한 것까지 더하면 마야의 달력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모든 것을 통합해서 볼 때 마야의 달력은 2012년 12월 21일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문자 그대로 시간의 흐름을 담은 마야의 달력이 종말론으로 이어진 '두 번째 인식 과정'이 5부에 설명됨으로써 책이 마무리된다.

시대가 어수선할 때, 세기가 바뀔 때, 종말론이 기승을 부린다. 내년 종말론은 외계인 귀환설, 행성 충돌설, 주가 예측 프로그램설 등 다양한 구실들을 들고 있다. 종말론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마야의 달력이 종말을 예지한다는 것이 아님을 알고 나니 마음이 좀 편하다. 
이 책을 덮으면서, 앞으로 좀 더 의미있게, 불안해하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나가도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