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이루기 전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동체의 단위로 살았을 것이다. 국경이 그려지면서 사람들은 파편화되고 군중 속의 섬처럼 공동체 문화가 파괴되어왔다. 그러나 아직도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만큼이나 많은 공동체가 있다. 
부족별 공동체처럼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해지는 공동체가 있는가 하면, 종교와 정치, 신념 등으로 만들어진 공동체처럼 개인의 의지가 들어간 공동체가 있을 것이다. 이런 공동체에 대해 다양한 책들을 읽어왔는데, 그중 몇 개를 들어보자면 윤구병 선생님의 변산공동체, 만일의 경우 자급자족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 바이오스피어2, 미국의 아미쉬 공동체, 그리고 오로빌이 있다.

내가 오로빌을 처음 만난 것은 <웰컴 투 오로빌> (2008, 오로빌 투데이 지음, 시골생활 펴냄)을 통해서였다. 오로빌의 시작, 오로빌의 영혼, 건축과 환경, 에너지, 사업과 산업, 조직, 교육이라는 장으로 나누어 오로빌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한 책이었다. '유엔이 선정한 가장 인간적인 도시'라는 설명을 보고 책의 내용을 훑어보며 이런 생활도 가능하구나 하고 생각한 기억이 난다. 
이런 독서의 기억을 까맣게 잊고 우리나라의 바쁜 현실에 맞추어 살다가 다시 오로빌을 떠올리게 된 것은 김선우 시인의 오로빌 여행기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2011, 김선우 지음, 청림출판 펴냄) 때문이었다. 김선우 시인의 전작 <내 입에 묻은 설탕 같은 키스들> (2007, 김선우 지음, 미루나무 펴냄)을 투명하고 예쁘게 읽었기 때문에, 저자와 오로빌의 만남이 참 궁금했다. 오로빌의 정신에는 시인과 같은 맑은 마음이 꼭 맞지 않겠나 싶었다.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는 오로빌 안내서가 아니라 에세이이다. 저자가 보고 듣고 느끼고 살아낸 생활의 이야기이다. 스리 오로빈도와 미라 알파사 부부가 만들어낸 오로빌은 생명과 환경, 자유와 행복이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영성 공동체이다. 어떤 공동체든 문제가 없을 수 없겠지만, 집단 지성이라는 말이 딱 적당할 정도로 많은 분야에서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최선을 다해 공동체를 발전시키고 있다는 것이 이 글에서 잘 느껴진다. 
나무를 심고 꽃거름을 만들고 촛불을 켜고 영화를 보고 노래를 부르고 채식을 하고 놀고. 여기에는 경쟁과 반목 대신 협동과 포용이 있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로빌의 행복을 누릴 마음의 여유가 내게는 없다. 이런 오로빌의 나날처럼 현재의 행복에 집중할 수 없겠지만, 쳇바퀴 굴리기에 지치면 가끔씩 남인도 오로빌이 떠오를 것이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