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보면 정말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내게 그런 사람은 '빨강머리 앤'의 앤과 '작은 아씨들'의 둘째딸 조다. 그 어린 고아 소녀 앤이 꿈을 잃지 않고 풍부한 상상력과 열정으로 삶을 만들어나가는 것을 보면서, 내가 어려서는 친구처럼, 내가 커서는 딸아이처럼 보듬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작은 아씨들의 조는 나도 둘째 딸이기 때문에 괜히 반갑기도 했고, 자매들과 어머니가 만들어가는 따뜻한 가정이 참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엄연히 허구의 존재이다 보니 내 일방적인 짝사랑으로 끝날 뿐이다.
그런데 문학작품 속의 인물, 또는 이미 고인이 되신 작가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런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인터뷰 모음이 바로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 (2010, 장영희 외 24인 지음, 중앙북스 펴냄)이다.

인터뷰어는 소설가, 평론가, 시인, 교수, 논설위원, 문학잡지 주간, 번역가, 사회비평가 등에서 한두 개를 겸직한 이들이었고, 인터뷰이는 국내외 문학 작품 속의 인물, 시인, 소설가, 영화감독, 철학자 등 다양했다. 인터뷰어가 가장 흠모한 대상이나 평생에 걸쳐 연구하고 강의한 대상에 대해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지고, 인터뷰어가 생각한 인터뷰이의 삶에 입각해서 대답을 충실하게 하고 있다. 작품과 시대 상황과 실제 삶을 기반으로 질문이 작성되어 있었기에, 그 대답도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는 능히 그럴 만한 내용이었다. 인터뷰이들이 사망한 이후 시대의 변화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정말 궁금했다. 얼마 전 읽은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에서 김수영 시인의 시를 읽었는데,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에서 또다시 김수영 시인과의 가상 인터뷰를 접하니 그 대답의 근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고 할까.

이제는 고인이 되신 장영희 교수님이 <모비딕>의 에이헤브 선장과 가진 인터뷰에서는 선장의 고독함이 잘 나타났고, 친일 전력 때문에 논란이 많았던 미당 서정주 시인과의 인터뷰에서 시인의 고통을 함께했다. 백석과 임화처럼 월북했기 때문에 접하기 어려웠던 작가들의 작품과 삶도 알아보았고, 도깨비 김씨는 '우리들이 잘라내고 버린 현실에 뚫린 구멍'임을 배웠다. 그 중에서 글쓰기는 '몸 쓰기'라며 힘찬 언어와 실천적 삶을 강조한 신채호 선생님의 편지가 기억에 오래 남는다. 
김경란 시인의 말처럼 참 겁이 날 정도로 마음에 드는 이 가상 인터뷰를 통해 과거와 현재와 허구라는 세 가지 세계가 혼재되며 녹아드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