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를 즐기는 이라면 한 해가 시작할 때 올해는 몇 권의 책을 읽어야겠다는 목표를 정하기도 하겠다. 대개 지난 해에 일도 바쁘고 마음의 여유도 없어서 책을 많이 읽지 못한 것을 반성하며, 올해에는 몇(백) 권의 책을 읽기로 거창한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5년간 1000권의 책을 읽고 1000권의 서평을 쓰며 책 읽기 고수가 된 파란여우 윤미화 님은 그의 서평을 모은 책 <깐깐한 독서 본능> (2009, 윤미화 지음, 21세기북스 펴냄)에서, '일 년 동안 책 50권 이상 안 읽기'를 결심했다고 말한다. '책을 적게 읽는 대신 몸을 놀려서 세상을 잘 읽었으면 좋겠다'(16쪽)는 것이 그 예상 외로 적은 책 목표의 배경이었다. 그가 읽고 써낸 책들의 서평에는 그런 세상 읽기가 잘 녹아들어가 있다.

저자는 한국문학, 외국문학, 고전과 해석, 인문과 사회, 인물과 평전, 환경과 생태, 문화와 예술, 역사와 기행, 만화와 아동의 아홉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서평을 싣고 있다. 여기 실린 86권의 책 중에서 내가 원전을 읽은 것은 부끄럽게도 겨우 네다섯 권밖에 안 되기 때문에 직접적인 가르침을 얻기는 어려웠지만, 그 짧은 부분에서도 그의 생각의 깊음과 내 얕음은 아주 극명하게 느껴졌다. 주어진 책 한 권의 표피만을 읽고 서평을 쓰는 나와는 다르게, 전작주의로 읽어서 쌓인 작가의 삶에 대한 내공을 마침내 책 한 권으로 맺어 갈무리하는 기법이 남달랐다. 작품만이 아니라 작품을 쓴 작가와 그 시대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이라고 할까. 

책 표지 속날개에 나온 저자의 짧은 약력은 귀농 이후의 생활만을 다루고 있지만, 그의 절도 있고 칼 같은 구절들을 읽으며 문학을 전공한 분이기를 바랐다. 그는 이미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에 대한 전문가였고, 그것이 5년간 1000권의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면서 마침내 꽃피워진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나와 같은 문외한이셨다면 따라갈 수 없는 생각의 깊이의 간극을 인정하기에 너무나 부끄럽기 때문에.
내가 아직 읽지 않은 다양한 분야의 책들에 대한 '뽐뿌'를 한가득 받으며 책을 덮는다. 앞으로는 좀더 넓고 깊게 책을 읽도록 노력해 보자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