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텐구天狗와 너구리가 함께 존재하는 이야기.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현대에도 공존하는 이야기. 아직도 신도神道와 신사가 뒤꼍으로 물러나지 않고 현역으로 활동하는 일본에서 나올 수 있는 지극히 일본적인 설정이다. <유정천 가족> (2009,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작가정신 펴냄)은 그런 설정 위에서 너구리인 야사부로의 관점으로 쓰여진 이야기이다. 

우선 '유정천'이라는 단어는 이 책에서 처음 접했는데, 이야기가 시작하기 전 일러두기 코너에서 이 단어의 뜻을 '구천 가운데 맨 위에 있는 하늘, 즉 형체가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상태'로 풀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의 유정천은 맨 마지막 뜻, 즉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상태이겠다.
"재미있는 건 좋은 거야"라는 바보의 피를 이어받은 야사부로네 4형제가 만들어가는 이 세상은, 그만큼 아등바등 살아가는 삶의 힘겨움이 아니라 재미와 여유와 인연과 대의를 이야기한다. 인간과 텐구와 너구리는 가위 바위 보처럼 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는 그런 관계이다. 너구리인 야사부로와 텐구인 아타가마 선생, 인간이면서 텐구의 능력을 계발하고 있는 벤텐은 각자의 세계를 대표하는 것처럼 서로 얽혀 있다. 지극히 인간적인 이들의 티격태격은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실실 웃음이 난다. 아무래도 화자가 '다카스키 신사쿠처럼 재미만 좇아 다니는' 셋째 아들 야사부로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지식하고 의지가 굳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약해지는 첫째, 은둔형 외톨이인 둘째, 한없이 예민해서 조금만 겁을 먹어도 꼬리를 드러낼 정도로 둔갑이 서투른 막내'까지 이들 넷이 아롱이 다롱이처럼 투닥거리면서도 서로를 위하고 감싸는 모습에 마음이 찡해지기도 했다. 이들을 하나로 모이게 하는 엄마도 개성 있는 캐릭터이기는 마찬가지였고.

파벌 싸움과 세력 다툼, 종족 간의 알력 등은 어떻게 보면 무거운 주제이지만, 한없이 가볍게 포장하는 작가의 실력이 대단하다. 400쪽이 넘는 도톰한 책을 한숨에 읽어내려가게 되었으니 말이다. 함께 준 따뜻한 손난로와 함께 킥킥 웃다 보면 어느새 책은 아쉽게 끝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