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유한한 인생에서 참으로 위로가 되는 것은, 욕망에 따른 '성취'가 아니라 이룰 수 없을지라도 가슴속에 '촐라체' 하나 품고 사는 일이 아니겠는가.
페이지 : 작가의 말 중에서

히말리야 고산 준봉 중에서도 칼날같은 암벽으로 유명한 '촐라체', 이 소설은 그 촐라체를 별다른 장비 없이 알파인 방식으로 등정했던 한국의 산사나이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하산 길에 한 명이 크레바스에 빠짐으로 해서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섰던 사람들의 투쟁과 사랑이야기. 실제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었던 산사나이들은 천신만고 끝에 하산한 후 신체의 일부를 절단하는 극한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는 흔히 묻는다. 왜 험난한 산을, 암벽을 목숨을 걸고 오르느냐고, 그래서 무엇을 얻느냐고. 소설은 답한다.

	길은 결국 두 갈래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나의 길은 경쟁에 가위눌리면서 자본주의적 소비문화를 허겁지겁 쫓아가는 길일 것이고, 다른 하나의 길은 안락한 일상을 버릴지라도 불멸에의 영성을 따라 이상을 버리지 않고 나아가는 길일 것이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었다.
페이지 : 327쪽

이솝우화를 보면, 포도나무에 달린 포도를 따 먹기 위해 애쓰던 여우가 포기하며 돌아서면서 하는 말이 있다. "저 포도는 틀림없이 신 맛일거야." 우리는 우리가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너무 쉽게 결정하고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투쟁과 도전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 그 성휘와 보람이 크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안락한 일상의 유혹을 빠져 나오기는 너무 어려운가 보다. 6,000m가 훨씬 넘는 험난한 촐라체의 암벽을 목숨을 걸고 올라가는 일을 두고,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사소한 도전에 감히 비유할 수는 없겠지만, 불편과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더 나은 무언가를 향해 나아간다는 점에서 내 나름의 촐라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이 책을 보면 안자일렌(Anseilen)이라는 등반 용어가 나온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음으로써 불의의 사고가 생기더라도 의지할 수 있도록 하는 등반기술이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안자일렌이 있다. 내가 내 몫을 하지 못한다면, 상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내가 그를 지탱해주고 당겨주지 않는다면 상대가 살지 못하는 것은 물론 나도 살 수 없다. 이 무거운 진리를 깨닫게 해 준 촐라체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