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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효창공원 옆에 있는 자장면집 ‘신성각’ 유리창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지구촌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이라도, 단 한 그릇 먹어보고 눈물을 흘려줄 음식을 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만들고 싶다. 21세기가 기다리고 있기에. 88년 10월 이문길”

수타면을 고집하는 주인 이문길씨는 가게 주변 반경 50m 안으로 배달 범위를 제한하고 있는데, 그 너머로 배달을 가면 자장면이 불기 때문입니다. 그의 허름하고 좁은 가게 벽에는 커다란 원형 시계 2개가 나란히 걸려 있습니다. 고장난 시계를 믿다가 배달 시간을 놓친 그는 그 날로 시계를 하나 더 사서 벽에 나란히 건 후 시차를 두고 건전지를 갈아 넣는다고 합니다. 틀린 시계 때문에 자장면 하나 먹겠다는 손님을 무작정 기다리게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책에 실린 간판 사진을 보니 전화번호가 ‘716-열두시십분’인데 언제 한번 꼭 찾아가서 자장면을 만드는 철학자의 솜씨를 맛 보고 싶습니다.

이 책은 이문길씨와 같은 19명의 고집쟁이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읽다 보면 이들의 고집이 당초부터 그들을 행복하게 만든 건 결코 아니지만, 저자가 왜 이들을 ‘행복’하다고 했는지 공감이 갑니다. 한 분야에 자리잡기 위해 주인공들이 겪어야 했던 시련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그들을 그들답게 만든 철학과 고집을 읽으면서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을 곁들여 보다 보면 잔잔한 감동이 느껴지는 책입니다.

언제 다시 도쿄를 여행할 기회가 생기면 옻칠의 명장 전용복씨가 심혈을 기울여 복원한 ‘메구로가조엔’의 옻 공예 작품들을 만나보고 싶게 만든 책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