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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만큼 조선사에서, 아니 한국사에서 논쟁적인 인물이 또 있을까? 83세에 숙종에 의해 사사된 사람. 조선은 역모가 아닌 한 대신을 사형시키지 않을 만큼 대신을 우대한 나라인데 그 유일한 예외가 바로 숙종 때의 송시열이라고 한다. 그의 죄목은 다소 애매한 ’죄인들의 수괴’, 즉 노론의 영수였다는 죄목이다. 대체 노론이 그 시대에 어떠한 잘못을 했기에 그 수괴라는 죄목으로 자연사를 목전에 둔 노대신을 죽였단 말인가? 그가 죽은 후에도 노론은 계속 집권당이었고 조선이 망할 때까지 집권당이었다. 송시열은 성균관 문묘에 공자와 함께 배향되었고, 전국 각지에 그를 모시는 서원이 설립되었다. 또한 宋子로 불리는 영광을 누렸는데 유교국가에서 姓뒤에 子를 붙이는 것은 그 인물을 성현으로 모신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러나 그의 반대당인 남인과 소론은 그를 성현으로 존숭하기는커녕 저주하고 증오해 마지 않았다.

조선의 주류 유학인 성리학은 후기에 이를수록 보수화, 수구화 되면서 예학으로 진행, 발전되었는데 예학의 대가인 송익필과 그 학통을 계승한 김장생, 김집이 송시열의 스승이다. 예학의 발전은 임란 이후 분출된 신분제 철폐운동에 대한 지배계급의 반동적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송시열은 28세에 인조의 둘째 아들 봉림대군(후에 효종)을 가르치는 대군사부(종9품)로 관직에 진출한다. 그 직후 병자호란을 당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갔다가 치욕의 항복을 목격한 후 낙향한다. 거듭된 인조의 관직제수도 불구하고 출사를 거부하다가 효종 즉위 원년 비로소 다시 정4품 사헌부 장령으로 출사한다. 그러나 효종이 인견(왕이 신하를 직접 대면하는 것)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사직한 후 효종의 거듭된 권고를 받고서야 조정에 나왔다.

송시열과 효종의 관계에 관해서는 평이 엇갈리는 듯하다. 특히 북벌에 대한 두 사람의 입장에 관해서. 송시열의 북벌론은 ’소중화’에 기초한 정체성 확립차원이어서 청과 단교하고 명을 섬기는 의리를 강조하는 명분적 북벌론인 반면, 효종의 북벌론은 치욕은 볼모생활을 되갚겠다는 현실적 정벌론이라고 볼 수 있다. 송시열은 줄기차게 효종의 군비확장과 북벌준비에 반대하였고, 효종은 송시열과 그의 산당에게 정권을 내어주면서까지 북벌을 포기하지 않는다(효종 10년인 1659년의 기해독대).

* 참고로, 대동법(토지소유 면적에 비례한 공평한 과세, 공납을 폐지하고 화폐성이 있는 쌀, 베, 돈으로 납세)의 실시를 둘러싸고 서인이 분당하는데, 김육의 한당은 이에 적극 찬성인 반면, 송시열의 산당은 반대하였다. 대동법은 광해군 즉위년인 1608년 경기도에서 처음 실시된 후 100년만인 숙종 34년(1708년) 전국으로 확대실시, 완성되었다. 대동법은 민생안정에 기여하고, 공인계급의 등장을 통해 신분제도 변화를 촉발시키고 상업자본주의 단초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육은 그의 정치인생과 관료인생을 걸고 초지일관 대동법의 확대실시를 관철시키고자 노력한 인물로 높이 평가된다.

북벌을 놓고 효종과 송시열이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효종이 의문의 급서를 당한다. 어의 신가귀가 효종에게 침을 놓은 후 침 맞은 종기 자리에서 계속 피가 솟아나 사망하였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침을 놓은 어의가 수전증이 있었다고 한다.

효종의 급서는 예기치 않은 논쟁거리를 제공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예송논쟁이다. 예송논쟁은 처음에는 상례에 관한 서로 다른 이견차원에서 전개되다가 나중에는 정치생명과 목숨을 내걸고 전개되는 치열한 당파싸움 내지 권력투쟁으로 확대된다. 1차 예송논쟁은 효종이 승하한 후 효종의 계모 자의대비가 3년복을 입을 것인지, 1년복을 입을 것인지를 두고 전개되었다. 송시열을 영수로 하는 서인은 임금을 제1의 사대부로 보아 사대부의 보편성을 강조하면서 인조의 적통은 소현세자 및 그 아들에게 있으므로 1년복으로 족하다고 보았던 반면, 허목, 윤휴, 윤선도를 중심으로 하는 남인은 왕권우위를 강조하여 가문의 적통과 종통이 모두 효종에게 있으므로 당연히 3년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와중에 남인의 논객 윤선도의 상소가 조정에 대파란을 불러온다. 종통과 적통을 분리한 서인의 1년복설은 단순히 예송의 문제가 아니라, 효종의 정통성을 부인한 역적의 논리라고 상소함으로써 피비린내를 예고한 것이다. 물론 서인들은 경악한다. 예송논쟁은 이제 학문(예학)의 문제가 아니라 목숨을 건 정치투쟁(당쟁)이 되어 버린 것이다. 1차 예송논쟁은 사안을 확대한 윤선도를 유배보내고 1년복을 입는 선에서 마무리된다.

그러나 인조의 아킬레스건, 소현세자의 억울한 죽음은 효종의 뒤를 이은 현종의 모가 죽자 다시 재발되는데, 바로 2차 예송논쟁이다. 현종의 모가 죽자 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의 상복기간을 둘러싸고 다시 논쟁이 벌어지는데, 서인은 차자의 예에 따라 9월설을, 남인은 장자의 예에 따라 1년설을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1차 예송논쟁의 논리가 판박이로 전개된 것이다. 그런데 현종은 서인의 대공설(9월설)에 격분하여 관련자들(서인)을 처벌하고 남인 허적을 영의정으로 삼는다. 그러나 현종 역시 34세의 젊은 나이에 급서한다.

현종의 뒤를 이어 14세의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오른 숙종이 남인 허목을 대사헌에, 윤휴를 사헌부 장령에 임명하고 송시열과 예송논쟁을 벌이다 죄를 입은 남인 계열을 모두 신원하자 서인은 경악한다. 올 것이 온 것이다! 즉위 4개월만에 숙종은 송시열을 함경도로 유배보내고 남인은 완전히 정권을 장악한다. 어린 숙종의 눈으로 보기에도 송시열을 영수로 하는 서인의 예학은 임금의 권위를 무시하거나 낮춰보는 사대부 중심의 논리로 보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효종과의 북벌을 둘러싼 갈등, 예송논쟁을 둘러싼 남인과의 치열한 정치투쟁 외에도 송시열은 다방면에서 혁혁한 갈등관계를 드러냈으니, 윤휴와의 갈등도 빼놓을 수 없다. 주자의 학설을 신성시하여 토씨 하나 바꾸는 걸 용납할 수 없던 송시열에게 "천하의 많은 이치를 어찌 주자만 알고 나는 모르겠는가? 이제 주자는 덮어 두고 오직 진리만을 연구해야 한다. 주자가 다시 살아온다면 나의 학설을 인정하지 않겠지만, 공자가 살아온다면 나의 학설이 승리할 것이다"고 주장하는 윤휴는 말 그대로 사문난적이었던 것이다. 송시열은 집요하게 윤휴의 파문을 주장하였고, 같은 서인이면서도 학문적 융통성과 포용성을 잃지 않아 윤휴를 감싸고자 노력했던 윤선거와도 대립하게 된다. 이런 와중에 병자호란 당시의 강화도 사건(윤선거가 병자호란 때 목숨을 걸로 항쟁하겠다면서 강화도로 갔다가 변복을 하고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빠져나온 사건)에 관해 송시열이 공개적으로 비난 하면서 윤선거와 송시열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대립하고, 마침내 윤선거가 죽은 후 송시열이 윤선거의 행장을 터무니 없이 무성의하게 지어 줌으로써 윤선거의 아들 윤증과도 갈라서게 된다. 이로 인해 분열에 분열을 거듭했던 남인에 비해 꽤나 오랬동안 단일한 정파를 유지해왔던 노론도 드디어 노론(송시열)과 소론(윤증)으로 분열한다.

다시 숙종조로 돌아오자. 2차예송논쟁을 승리로 마무리하면서 정권을 획득한 남인정권은 모처럼만의 집권에 도취되었다. 남인 영수 허적이 사사로운 잔치를 하면서 때마침 잔칫날 비가 오자 궁궐에서 쓰는 기름장막을 보고 없이 사용한 일이 있었다. 어찌 보면 대수롭지 않은 일인 것 같은데, 숙종은 허적과 윤휴를 사사하고 숱한 남인들을 죽이거나 유배보내는, 소위 ’경신환국’을 단행한다. 그 유명한 숙종의 ’환국정치’가 시작된 것이다. 환국정치란 판을 갈아엎는 방식의 극단적 정권교체를 통해 왕권의 위엄을 높이는 숙종 특유의 통치행위를 말한다. 숙종조는 여당과 야당이 몇번의 환국을 통해 정권을 교체하는데, 임금의 뜻에 따른 예측불가능한 환국으로 인해 수많은 대신들이 죽어나가게 된다.

후사가 없던 숙종이 남인과 가까운 장희빈에게서 왕자(훗날의 경종)를 얻자 원자로 정하고 종묘에 고하였다. 종묘에 고한다는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사실로 천명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송시열은 이를 무시하고 원자 책봉을 탓하는 상소를 올리고 당연히 숙종은 격분한다. 숙종은 전격적으로 정권을 남인에게 다시 맡기는 기사환국(1689년)을 단행하고, 남인은 옳거니 서인에 대한 대재적인 정치보복을 자행한다, 이때 역적으로 몰려 국문에 응하기 위해 제주에서 상경하던 송시열은 가는 곳마다 노론 계열의 지방 지배층의 환대를 받지만, 서울에 올라오기도 전에 정읍에서 바로 83세의 나이로 사사된다.

그러나 장희빈의 득남을 통해 재집권한 남인은 1694년 갑술환국을 통해 다시 정권을 서인에 내어주고 장희빈은 사사당하고 인현왕후가 복귀한다.

이후 노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종이 즉위하고, 노론의 지지를 받던 연잉군(훗날 영조)은 왕이 되기 위해 목숨을 건 건곤일척의 도박을 단행하면서 숱한 파란이 전개되고 그 전개의 정점에 바로 비극적인 사도세자의 죽음이 있다. 물론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의 파란만장한 등극도. 이덕일씨의 또 다른 작품인 <사도세자의 고백>,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 경종 즉위 이후의 사건들을 흥미진진하게 담아내고 있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가 담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은 매우 광범위하고 얽혀 있어 일독으로 이해하고 정리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차분히 읽다보면 송시열과 노론의 장기집권이 얼마나 조선을 갈등과 증오의 정치판으로 내몰았는지, 그로 인해 국력이 낭비됨으로써 비극적 멸망에 들어서게 되었는지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런 점에서 강추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