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구르믈 벗어난 달처럼>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었는데, 바로 정여립 역모사건 혹은 기축옥사와 관련된 내용이다.
서인인 이이의 추천으로 조정에 발을 디뎠던 정여립은 그 출린과 달리 이이, 성혼을 스승으로 모시다가 이이가 죽고 동인인 정권을 장악한 시점에서 스승인 이이, 성혼을 공격한다. 군사부일체를 강조하던 유교사회에서 스승을 배신하는 행위는 인륜을 어기는 강상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고, 이에 선조는 정여립의 처신을 못마땅해 하였다고 한다.

정여립의 사상은 당시의 주류 유학에 비하면 진보적임에 틀림없다. '천하는 공물인데 어찌 주인이 있으랴? 누구를 섬기든 임금이 아니겠는가?'. '왕후장상, 귀천의 씨가 따로 없다.', '천하는 백성들의 것이지 임금 한 사람이 주인이 될 수 없다.', '백성의 마음은 곧 천명이니 백성을 괴롭히는 군주는 갈아야 한다.' 등등 시체말로 절대군주시대에 목베이기 딱 좋은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그는 왜구를 퇴치하겠다는 목적으로 대동계를 결성하여 향촌에서 무력을 양성하는데 그의 진보적 사상과 무력이 결합하는 양상 앞에 의심많은 선조의 칼날을 피해가기는 어려웠으리라.

선조는 임진왜란 같은 외침에는 한없이 나약했지만, 자기 체제에 대한 도전에는 막강한 힘을 발휘한 특이한 군주였다. 선조는 인조나 영조처럼 아들(광해군)까지 믿지 못했던 임금이다. 사실 선조는 최초의 방계출신 임금인데, 한미한 가문 출신어었던 명종의 후궁 창빈 안씨의 소생 덕흥군의 셋째 아들이 바로 선조인 것이다. 명종이 후계자 없이 죽는 바람에 왕위에 올랐던 종친인 만큼, 그는 평생을 콤플랙스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시국을 바라보는 안목도 좁았다.

정여립에 대한 역모가 고변되자, 정여립은 한양으로 상경하여 자신의 결백을 호소하는 대신 진안 죽도로 피신하는 행보를 보이면서 오늘날까지 과연 정여립의 역모가 사실인지 아니면 정치적 음모인지에 관한 논란거리를 제공한다. 아울러 죽도에서도 자살했다는 설과 관군에 포위된 후 타살되었다는 설이 갈리고 있다. 이처럼 동인이 정권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정여립이 해명하는 대신 도주하다가 죽자 서인은 역모를 기정사실화학 동인에 대한 대반격에 나서는데...

이때 기축옥사의 위관으로 나선 이가 바로 송강 정철이다.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 빼어난 가사문학의 정수를 보여준 심성 여린 듯한 정철은 기축옥사를 처리하면서 '동인 백정'이라는 지독한 별명을 얻었다. 그는 호남의 1,000여명의 사대부를 고문하고 처형하면서 동문수학한 자들도 예외를 두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평소 좋지 않은 개인 감정을 품고 있던 자들을 철저치 파괴하였다고 한다. 이로 인해 기축옥사로 원한이 깊었던 호남선비 집안에서는 아낙네들이 도마에 고기를 올려놓고 다질 때마다 반드시 '증철이 좃아라, 증철이 좃아라' 혹은 '철철철철'하고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아낙네들의 단순한 입버릇이 아니라 정철을 미워하는주술이었고 400여년간을 대물림해온 한맺인 풍습이었다. 정철이란 인물은 참 표독한 인물이었나 보다. 그는 한 때 강원도 관찰사로도 재직했는데 강원도에서는 이름 모르는 고기가 낚시에 걸리면 '이놈 정철아'라고 소리치며 고기의 머리를 때려 기절시켰다고 한다.

기축옥사를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정철도 광해권의 세자 책봉 문제를 둘러싼 북인의 영수 이산해의 모략에 빠져 선조의 분노를 사게 된다. 그는 유배를 떠나고 서인이 몰락하면서 동인의 재집권을 이어진다. 이때 위관이었던 정철의 처벌 수위를 놓고 강경처벌(사형)을 주장하는 북인과 유배로 족하다는 온건파인 남인이 갈리게 된다.

고 김용덕 중앙대 교수는 기축옥사를 두고 "정여립은 서인의 함정 수사에 말려 들었다"고 주장하며 정철이 정여립을 유인해 죽도에서 암살하도록 한 최고 지휘자였으며, 정여립을 죽여 사건을 역모로 굳힌 후 위관이 되어 정적들을 광범위하게, 잔인하게 제거하였다고 보았다. 김교수가 함정수사라고 보는 논거는 아래와 같다.
1) 정여립은 굳이 도망갈 이유가 없었다. 당초 선조도, 동인도 사건을 사소하게 생각했으므로 정여립이 상경해 해명만 하면 끝날 사건으로 알고 있었는데, 정여립이 도주하면서 사건은 의외로 확대되었다.
2) 그러나 정철만은 정여립의 도주를 미리 확신하면서 즉시 상경하여 임금을 만나기 위해 입궐하였다.
3) 정여립은 도주하면서 편지와 같은 증거물을 고스란히 집에 남겨 두었다. 이로 인해 편지의 발신자, 수신자 모두가 역모 사건의 피할 수 없는 피해자가 되었다.
4) 왜 죽도로 피신했으며, 자신의 행방을 알리며 도주했는지도 의문이다.
5) 일부 기록에는 "정여립이 죽돌 단풍놀이 삼아 놀러 갔는데 선전관과 진안현감이 죽인 후 자결한 것으로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아무튼, 그 규모나 잔인성 면에서 조선조 최대의 역모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 실체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비극적 사건임에 틀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