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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이 대학 1학년이던 1987년 이었던 걸로 기억하니까, 물경 22년 만에 다시 읽는 셈. 선악과, 자유의지, 사탄, 구원, 종말 등에 관해 색다른 시각을 보여준 그 책으로 인해 한동안 기독교와 교회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사람의 아들로 칭해지는 아하스 페르츠(정통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면 지혜의 신이 아니라 사악한 뱀이자 악한 무리의 괴수인 사탄에 다름 아니다)는 유대 민족의 여호와에게 절망하여 이집트, 바벨로니아, 인도, 로마 등지를 유랑하며 참된 신을 찾아 외롭고 힘든 구도생활을 해 나간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인간세계의 불행, 고통을 설명해주고 따뜻하게 감싸 안아줄 수 있는 참된 종교를 찾지 못한다.

아하스 페르츠는 소설속 현실의 주인공인 민요섭과 그를 따르던 최동팔의 사상적 궤적을 표상화한 것이다.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의 짐을 진 채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신약성서 속의 예수의 가르침과 최후의 심판을 통한 구원은 사랑과 구원이기보다는 신의 독선에 불과하였다고 생각한 그들은 정통 기독교를 떠나 새로운 신을 찾아 나선다. 아울러 가진 것을 모두 가난한 자, 소외된 자에게 내어놓은 철저히 이타적인 삶을 살아 나간다.

하지만, 민요섭의 구도자적 삶은 허무하게도 기독교에의 회귀로 결론지어지고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조동팔이 민요섭을 살해한 것으로 드러난다. 세상의 모든 불합리와 고통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신을 찾는다는 것이 애초부터 가능한 일이었을까? 어차피 신이라는 것이 이러한 불합리 속에서도 삶을 살아나가야 하는 인간이 창조해 난 허상인 바에야….

이 작품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다른 나라의 신과 종교들이 설명되고 있어 흥미롭다.

1. 이집트의 오시리스 / 이시스 / 호루스 / 세트

이집트신화에서 오시리스의 삶과 죽음, 부활에 관한 신화만큼 중요한 이야기도 없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집트의 통치자가 된 오시리스는 누이동생 이시스를 아내로 맞아 함께 이집트를 문명화시켰다. 그는 나머지 세계에도 문명의 혜택을 주기 위해 나라를 이시스에 맡기고 이집트를 떠났다. 한편 동생인 세트는 오시리스의 권력과 성공을 시기하여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 세트는 자신의 공모자들과 함께 형을 연회에 초대하였다. 연회장에 아름답게 조각된 나무 상자를 전시한 후 그 상자를 거기에 몸이 딱 들어맞는 자에게 주겠다고 속여 형을 상자에 가둔 다음 납을 부어 봉인하여 강에 던져 버렸다. 이렇게 살해된 오시리스의 시체가 든 관은 레바논까지 흘러가 나뭇가지에 걸려 멈추었다. 시간이 지나자 줄기가 자라 상자를 뒤덮었고, 결국에는 상자를 삼켜버렸다. 페니키아의 왕이 기둥으로 쓰기 위해 그 나무를 베었는데, 그 나무 기둥에서 아주 향기로운 냄새가 있다는 소문이 온 세상에 퍼졌다.

사랑하는 남편을 읽은 이시스는 비탄에 잠겨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이 나일강의 범람을 일으켰다고도 한다. 나무상자의 소문을 들은 이시스는 이를 찾아가 나무에서 상자를 꺼내 오시리스를 살려냈다. 살아난 오시리스는 이시스와 사랑을 나눈 후 다시 죽는데, 그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매의 머리를 가진 하늘의 신인 호루스이다. 죽은 오시리스의 시체는 무덤에 묻혔고, 이시스가 그 무덤을 지켰다.

세트는 형을 죽이고 나서 이집트의 파라오가 되었으나 오시리스의 시체가 무덤 속에 있다는 걸 알고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세트는 무덤 속에서 오시리스가 들어 있는 상자를 찾아 시체를 열네 조각으로 갈기갈기 찢은 다음, 이집트 곳곳에 흩뿌렸다. 그렇지만 이시스가 시체조각을 모두 도로 찾아 오시리스를 다시 한번 부활시킨다. 그러나 남근만은 찾을 수 없어 생식능력을 상실한 오시리스는 죽은 자들의 지배자로서 서쪽 사막 지평선 너머에 있는 땅을 통치하게 되었다. 오시리스가 죽은 자의 땅으로 여행하는 걸 돕기 위해 이시스는 방부 처리와 미라 만드는 법을 발명했고 여기서 이집트 종교의 근간을 이루는 정교한 의식, 곧 영생을 보장하는 장례 의식이 시작되었다.

이시스가 호루스를 잉태할 때 교접 없이 단성생식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호루스는 숙부 세트에게 도전하여 그를 죽이고 이집트 왕이 된다. 이시스는 모성의 신으로 어린 호루스에게 적을 먹이는 이시스의 이미지는 훗날 초기 그리스도교가 성모 마리아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처럼 이집트 신화에서 오시리스의 죽음과 부활, 단성생식 등은 기독교의 수태고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등과 유사성이 있다.

2. 바빌로니아의 마르두크

3.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배화교)

조로아스터(페르시아어로는 Zarathustra)라는 페르시아의 예언자가 만든 종교.

동방박사 세 사람은 조로아스터교의 사제들이었다.

아후라 마즈다는 절대 유일의 신으로 우주의 창조자이다. 아후라 마즈다는 스펜타 마이뉴와 앙그라 마이뉴란 쌍둥이 아들을 두는데 둘은 각기 선과 악, 참과 거짓, 빛과 어둠을 맡아 다스린다. 세상은 이들 두 세력간의 대결장으로 파악된다. 아후라 마즈다는 사람들을 이 전쟁에 참여해 싸우라고 요구하는데, 모든 사람은 죽고 나서 얼마나 잘 싸웠는지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된다.

세상의 이러한 이원적 대립을 통합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것이 이른바 ‘자유의지’의 개념이다. 사람들은 그 자유로운 선택으로 선과 참 또는 악과 거짓 쪽에 서게 된다. 하지만 아후라 마즈다의 의지는 참과 선 쪽에 있으므로 앙그라 마이뉴와 그를 따르는 악마들은 결국 심판의 불 속에서 멸망하게 된다.

4. 엘(El)과 야훼(Yahweh) 그리고 바알(Baal)

가나안 지방(오늘날의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을 포함하는 지역) 최고신의 이름은 엘(El)인데, 역사상 어느 시점에 가나안 사람들이 믿던 엘은 히브리 민족의 유일신으로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준 야훼(Yahweh)와 합쳐졌다. 엘이란 이름의 중요성은 그것이 포함된 히브리 단어에서 분명히 드러나는데, 가령 베델(Beth-El)이란 단어는 ‘하느님의 집’이란 뜻이고 하느님의 천사와 씨름을 하고 이긴 야곱은 그 이름을 이스라-엘(Isra-el)로 바꾸는데 ‘그는 하느님과 함께 겨룬다’는 의미이다. 한편, 가나안 사람들은 바알을 중요한 풍요의 신으로 섬겼는데, 바알이란 이름은 메소포타미아의 벨(Bel, 마르두크의 다른 이름)과 관련이 있다. 바알은 비의 신, 농경의 신, 풍요의 신으로서 성서를 보면 야훼의 적, 타파되어야 할 우상으로 묘사되고 있다.

l 니체는 기독교 윤리를 가리켜 노예의 도덕이라고 했다는데…

“나는 기독교에 대하여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최악의 비난을 해야겠다. 나는 기독교를 가장 무서운 저주라고, 그 자체로 가장 무서운 타락이라고 부르겠다. 사람들이 <신약성서>를 읽을 때 장갑을 끼는 것은 당연하다. 더없는 불결함이 사람들로 하여금 어쩔 도리 없이 그렇게 하도록 만든다.”

니체의 설명에 따르면,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어리석은 노예들의 정신에서 비롯되었는데, 산의 정상에 오를 배짱이 부족했던 그들은 산기슭에 머물러 있어도 기쁘기만 하다는 철학을 스스로 만들어 냈다. 기독교인들은 성취감을 실제로 불러 일으키는 요소들(세상의 지위, 섹스, 지적 정복, 창의성)을 즐기기 원했지만 그런 아름다운 것들이 요구하는 곤경을 참아낼 용기를 갖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위선적인 믿음을 짜내기에 이르렀다. 말하자면 자신들이 원하기는 하지만 싸움을 벌여가며 얻기에는 역부족인 대상들을 거부하는 한편, 그들이 굳이 원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손에 넣게 된 것들을 찬양하는 식이었다. 무력함은 ‘선함’이 되었고, 천함은 ‘겸양’이 되었고, 자신이 혐오하는 사람에 대한 종속은 ‘복종’이 되었고, 니체의 표현을 빌리면 ‘복수할 수 없는 것’은 ‘용서’로 둔갑했다. ‘위안의 종교’에 빠진 기독교도들은 그들의 가치체계에서 바람직한 것보다는 쉬운 것에 우선권을 둠으로써 그들의 삶의 잠재력을 모두 낭비했다.

- 알렝 드 보통의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