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생일 때, 
우리학교엔 다소 독특한 선생님이 계셨다.

난 사실 느릿느릿한 목소리의 그 선생님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고
선생님의 담당과목인 국사니, 근현대사니 하는 역사 과목들 역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한지 한참이나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생님만큼 내 마음 속에 뚜렷한 인상을 남기고 계신 분이 또 없다.



인문계 고등학교였기 때문에 여름 방학 내내 보충수업을 받아야했고,
우리는 공식적인 서류상의 이름은 ’특기적성 활동비’로 나오지만 사실은 보충수업료인,
2만원 남짓의 수업료를 내야 했다.

그 때, 선생님은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우리가 낸 보충수업료를 우리를 위해 쓰시겠다며
갖고 싶은 책이 있으면 종이에 적어달라 하셨다.

그리고 어느날,
우리가 신청했던 책이 한가득 든 상자를 들고 오셔서는
각자에게 책을 나눠주시며 그 약속을 지키셨다.
직접 그 책을 사주시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되돌려주신 것이다.

잔잔한 울림이었다고 할까...
그 때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와서 생각하니 더 뭉클하다.
보충수업료를 돌려줄 생각을 하는 것만 해도 감동적이었는데
그 돈을 그냥 돌려주시지 않고. 우리에게 책을 사주는 걸로 돌려주시는...
정말 우릴 생각해주시는 진정한 선생님이셨으니까.

아무리 학생들을 아낀다고 한들
무더운 여름 방학까지 학교에 나와 우리에게 보충수업을 해주시면서도
그 수업료를 학생들에게 되돌려주려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내가 선생님이라면 생각조차 못했을 일이다.




책 리뷰를 쓰기 전에 이런 연관성 없어보이는 이야길 쓴 이유는..
내게 이 책을 추천해주셨던 분이 그 선생님이셨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시 읽는 내내, 선생님이 떠오르면서
객관적인 시선을 갖게 해주려 애쓰시던 선생님의 수업도 생각났다.

고등학생이던 그 때는,
그저 가벼운 맘으로. 1시간동안 훌훌 읽고 덮었던
인권 이야기 조금 나오는 만화책이란 생각이었는데
지금에 와서 이 책을 다시 읽자니... 그 때와는 또 느낌이 다르다.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바탕에 깔려있으면서
비판해야할 부분에 대해선. 또 분명하고 날카롭게 그려냈다.

인권 만화이면서도, 이 책을 보며 난 내 자신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하게 됐다.
내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차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고,
또 내 자신이 가졌던 편견에 대해서도 새삼 생각해 볼 시간이 됐다.

내 자신이 차별받는 여자이면서도-
아직까지 남자들의 생각에 맞춰갈 생각밖에 못하다니.

특히 고등학생이던 그 때도, 지금도...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조남준씨의 ’누렁이2’는
고정관념에 갇혀 한 가지밖에 못 보는 나를 가장 많이 반성하게 했다.

다수에 좇는 가치에 순응하는것이 善이고, 그에 反하는 것이 무조건 惡인것도 아니고,
남자들에 맞추지 않고도 여성성을 내세워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도 있을텐데
여자인 내가, 남자들의 사회에서 여자들에게 행해지는 차별을 너무나 당연시 한다는게...
남자들의 세계에 무조건 편히- 묻어가서 편하게 살아가려 한다는게..

세상에 좌와 우. 혹은 흑과 백 처럼... 단 두 가지 가치만 있는 건 아닌데 말이다.
종종 우린 멋대로 그렇게 착각하고, 편견에 갇혀 비틀비틀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