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서술자의 관점이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서술자의 종교나 국적으로 인해, 역사의 서술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며 이것을 역사를 보는 관점, 역사관이라고 한다.

현재 교학서 교과서 파문이나, 일본의 위안부서술, 중국의 동북공정에서 보듯 역사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관점에 주관이나 민족이 끼어들게 되면, 역사는 왜곡되고, 하나의 진실은 여러 가지로 해석되거나 은폐되어 진다.

그래서 중립적인 역사적 서술은 무척 중요하다. 후세에 역사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자료,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자료들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십자군전쟁도 역시 그러하다. 이슬람 측의 기술과 그리스도교 측의 기술이 차이가 나는 부분들이 수없이 많으며 특히 중세의 역사서술은 믿을 수 없는 부분들도 많이 존재한다.(하늘의 계시, 신의 기적 등등)

 

시오노 나나미는 “이 책은 진정한 평화주의자가 되길 희망하는 내가 온 정성을 다해 조사하며 기록해나간 전쟁 역사이다.” 라고 이야기하면서 십자군 이야기를 시작한다.

십자군의 출발점은 궁지에 몰린 교황에서 찾을 수 있다. 일명 ‘카노사의 굴욕’으로 알려진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하인리히 4세의 알력싸움에서 교황은 황제에게 치욕을 줌으로써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을 기회삼아 황제는 이 굴욕을 갚기 위해 교황을 핍박하고 대립교황까지 세우면서 교황의 권위를 꺾는데 주력한다. 결국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로마가 아닌 도피처인 살레르노에서 숨을 거두게 되고, 권위를 이어받은 교황인 우루바노스 2세는 교황의 권위를 되찾기 위한 방편으로 십자군원정을 제창한다.

 

p28 "우르바누스 2세는 대담한 승부를 건 것이다. 선임자인 그레고리우스 7세는 황제를 사흘 밤낮 눈 속에 세워둠으로써 로마 교황의 권위를 과시했지만, 그 강경책의 결과를 직접 경험한 우르바누스 2세는 로마 교황의 권위, 즉 세상의 모든 군주를 지도할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은 다름 아닌 로마 교황이라는 것을 수십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동방에 보내 예루살렘을 무력으로 탈환함으로써 보여주려 한 것이다."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는 말로 축약되듯 십자군 원정은 세계의 가장 큰 일신교의 전쟁일뿐만 아니라, 교황의 힘이 절정에 이르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중세의 역사를 좌우하게 된다.

 

이 방대한 원정의 기술에서 시오노 나나미의 관점은 “인물”위주의 서술이다.

십자군 원정이 교황의 권위를 되찾기 위해 제창되었다면, 결국은 인간의 욕망과 의지로 점철된 전쟁이기 때문이며, 그래서 이 책에는 십자군을 이끌었던 원정제후들의 알력과 인간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게다가 1차 십자군의 성공을 이루게 해준 것은 결국 이슬람의 분열과 욕심 때문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p311"십자군측을 위험에서 구해준 것은 셀주크투르크측의 변함없는 내부 분열과 영지 쟁탈전, 적대의식, 그리고 그들의 탐욕이었다. 보에몬드를 석방하면서 받은 막대한 몸값으로, 이슬람 영주들은 그리스도교측 중요인물을 붙잡으면 한몫 챙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결국, 이슬람측의 목표의식 부재가 가장 큰 패배요인이었으며, 이슬람이 종교라는 목표의식가질 수 있었던 것은 살라딘의 등장을 기다려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1096년 유럽을 출발하여 1118년 십자군국가가 성립되어 예루살렘의 왕으로 불리었던 보두앵의 죽음과 비쟌틴황제 알렉시우스의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1권은 출발부터 23년간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성스러운 그리스도교 국가의 성립과 성지탈환이 목표였던 십자군의 기치에, 수많은 이교도들이 희생되었고, 그것은 순례행으로 정당화 되었다.

하지만 진정 성스러운 국가는 어떤 국가이며,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시오노 나나미는 책속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p239"선인과 악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한 인간 안에서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나 철학이나 윤리를 통해 교정하려 노력하는 것인데 아직도 그 성과는 신통치 않다. 옛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을 두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