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맥 매카시의 "국경 3부작"을 매듭짓는 작품이자 <모두 다 예쁜 말들>에 나왔던 "존 그래디"의 그 후의 이야기. 국경 3부작으로는 <모두 다 예쁜 말들>과 <평원의 도시들>사이에 <국경을 넘어>라는 작품이 하나 더 있다. 존 그래디의 이어지는 이야기라고 해서 국경을 건너뛰고 곧바로 <평원의 도시들>부터 읽었는데, 나중에 나는 이것을 깊이 후회하게 된다. "3부작"은 멋으로 붙여놓은게 아니었다. 앞으로 읽을 사람은 제대로 순서대로 읽읍시다.

조숙한 듯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해도 존 그래디가 아직 16살 어린 나이였던<모두 다 예쁜 말들>에 비하면, 이 이야기에는 줄곧 퇴폐의 냄새가 따라다닌다. 1953년, 19살이 된 존 그래디는 멕시코 국경 근처의 작은 목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무대인 미국 남서부와 멕시코 북부는 결코 평화롭다 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의 선의가 느껴지는 곳. 그러나 이곳도 전쟁이나 석유 산업으로 인해 변모하고 있었다. 이곳의 카우보이들은 다른 곳, 새로운 환경을 찾아 갈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이 익숙한 땅에 남아 살아가고 있다. 소코로가 차려준 식사를 하고, 도시락을 싸들고 일을 나간다. 그렇지만 이미 이 땅은 임종이 가까워져 있었다. 마지막 장에서는 목장도 군에 접수되어 버린다.

말을 길들이고, 소를 몰고, 사냥개를 데리고 사냥을 나가는 변함없는 카우보이 들의 삶. 말을 다루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존 그래디에게는, 빌리를 포함한 연상의 카우보이들도 경의를 표한다. 그런 생활 속에서 존 그래디는 국경 너머 멕시코 마을의 16살의 어린 매춘녀 막달레나를 만나 강렬한 사랑에 빠진다. 그는 주위의 충고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고 결혼을 결심한다. 설득을 포기한 빌리도 결국 힘을 실어 주지만, 비정한 운명은 두 사람을 찢어놓는다. 존 그래디에게 있어서는 형제와도 같은 28살의 빌리 파햄. 왠지 등장하는 장면이 많고, 무언가를 짊어지고 있는 듯 한 무게감 있는 인물이라 생각했더니, 이 빌리가 바로 전작인 <국경을 넘어>의 주인공이었다. 먼저 이것부터 읽어 두었어야 했다.

존 그래디는 <모두 다 예쁜 말들> 에 이어서 또 다시 사랑을 한다. 연애 체질이라고 해야 할까 감정에 충실하다고나 할까. 마음을 의지할 곳, 자신을 쏟아 부을수 있는 곳을 찾고 있다. 존 그래디의 다음 이야기를 읽고 싶어서 손에 든 책이지만, 결말은 잔혹해서 이런식으로 전개되는 것인가! 하는 느낌으로 조금 슬프다. 코맥 매카시는 단지 스토리와 재미에만 치중하는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코맥 매카시 소설 속 문장들을 읽고 있으면 마치 음유시인이 노래하는 서사시를 듣고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저자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좀 더 큰 것이었구나, 매카시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를 생각하면서 읽는다. 에필로그는 2002년, 80세가 넘은 빌리와 한 남자의 난해한 대화로 끝을 맺는다. 대화 중, 남자가 본 꿈 속의 남자 이야기가 매우 깊고 의미심장 하다. 제대로 이해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지만... 뿌연 흙먼지 속으로 시와 철학이 보일듯 말듯 한 이 작품. 타코스를 먹어 보고 싶어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