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작은 표지로 보았을땐 내가 사초녀인지라 중년남자로 보였고, 보았다. 일상의 갈등내지는 답답함을 삭히려는 모습으로도 보이고, 그런 삶의 고민이 아니어도 중년에서 갖음직한 고독을 만끽하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한없이 펼쳐진 끝이 보이지 않는 방파제가 아득해서, 알 수 없는 앞날을 예견하는 듯도 보였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그건 자신이 오래도록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장년을 넘은 노년의 사내였다.

<역 전은경>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를 얼마나 힘겹게 받고 힘들게 읽었는지 이 이름을 보는 순간 왠지 선입견이 자리했었다. 그렇게 번역했으면 또 어쩐다 하는 생각과 마찬가지로 이 책이 올 날이 지나고도 안와서 연락하니, 택배기사가 말없이 소화전에서 근 5일을 재웠다는. 앞에 책은 반송되었다가 다시 왔었다.

<이 책은>

서평이벤트 당첨 도서로 받았다. 뮤진트리와의 첫 인연이다. 책을 밀려서 늦게 받은 이유도 있고, 받아서 읽고도 김장과 생신 그리고 나의 예기치 않은 사고로 거의 5일만에 리뷰를 올린다. 이런 경우는 거의 없는데 본의 아니게 죄송함...물론 아직도 건강이 덜좋은 상태로... 책은 의외로 사이즈가 약간 작다. 속지도 고급스럽지만 간만에 오타 한 개 발견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놀라운 꼼꼼함에 박수를.

<책 내용 맛보기>

외딴 섬엔 자신과 늙은 개, 역시 늙은 고양이가 가족이다.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은 얼음구멍을 깨고 목욕을 하는 행위가 매일이다. 그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유일한 사람은 집배원. 그 집배원은 일이 없어도 매일 들른다. 전직 의사였음을 알고는 늘 병에 관하여 자신이 걸렸다고 믿고 상담한다. 돌아오는 대답은 살갑지 않아도 늘 묻는다. 그리곤 간다. 다음날 또 온다.

그런 어느날 눈에 익은 여인이 보였으니 40년 전의 연인. 그 여인은 보조기를 끌고서 나타난거다. 잔잔한 호수에 파문이 일듯 그녀의 등장은 그의 삶에 적잖은 충격이었고 아울러 그 옛날 약속을 지키라는 부탁에 안절부절못하고 수락하게 된다. 시한부 삶임을 그녀의 핸드백을 뒤져서 알게 된거다. 그녀와 만날때 그가 하던짓. 사람들의 얘기를 엿듣고 사람들의 서류를 몰래 훔쳐보고...그녀가 안뒤부터 그녀껀 건들이지 않았음을 상기한다.

아버지는 웨이터였는데 신발(구두)을 항상 살피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어머니와 좋은 사이는 아니었던 아버지셨는데 나를 데리고 숲 속 연못에 데리고 가셨던 얘기를 그녀에게 해주고 꼭 데리고 가겠다는 약속을 했었다. 허언으로 내뱉은 말을 지킨 결과가 의사되는일. 촉망받는 수영여선수의 엉뚱한 팔을 절단한 의료사고로 징계를 받았으나 아예 의사의 길을 접고 섬에 은둔, 자신의 삶을 섬 안에 가뒀다. 그 약속을 위한 길을 떠난다. 그 숲 속 연못을 가는 여정서 아버지와의 추억이 되살아나고...연못에 도착, 죽을뻔한 순간에 보조기에 의지해야 하는 그녀가 나를 구한다. 그건 아직도 사랑함인데 그걸 반신반의하는 나.

숲 속 연못 여행이 끝나고 자신의 딸을 만나달라는 그녀. 그녀의 딸 루이제는 내딸이란다. 아뿔사~ 이런 복수가 어딨담. 딸의 존재를 알릴 수도 없었겠지만 죽을 날이 가까운 상황에서 알려주다니. 너무나 이해안되는 상황이지만 싫지가 않다. 두 모녀는 사사건건 의견이 대립하는 형편없는 모녀다. 그 중간에 어정쩡하니 걸치게 된 나는 자못 당혹스럽고 어쩌지 못하다 섬으로 몰래 돌아와 버린다. 편지를 그제서야 쓰게 되는데...

<책 읽은 소감>

전체적으로 쓸쓸함과 외로움이 진하게 배어나오지만 난 그렇지 않았음에 의아하다.섬에 12년 동안 개와 고양이 그리고 개미집의 개미와 사는 생활. 섬이라는 고립된 상황에서도 나는 외롭지 않다. 그건 그냥 일상일뿐이다. 얼음구멍을 깨고...산책하고, 할 말도 없지만 안오면 이상한 집배원이 들리고. 이상할게 없는 평범한 일상이다. 그건 우울해 보이지 않았다. 외로워 보이지도 않았다. 그냥 그의 삶이었다.

파문을 일으킨 옛 연인에게 비겁한 나. 40년 만에 나타난 그녀에게 변명이자 해명조차 정당하게 하지 못하는 나. 그 옛날 말없이 도망치듯 이젠 도망칠 수도 없는데,그녀가 그 이유를 물어보면 어쩌나 그걸 불편해한다. 참으로 비겁하다. 비겁하기 짝이 없다. 어쩜 그렇게 비겁한지 한 대 패주고 싶었다. 적어도 사내라면 그 옛날 그리 처신할 수 밖에 없었다던가, 이제라도 당당히 사과하면 될 것을, 그걸 못한다. 안해봐서 못한다. 자존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의 이혼에서도 자식은 없었는데 존재조차 몰랐던 딸의 등장이라니. 그의 남은 생을 송두리채 뒤흔든건 옛 연인의 등장보다 더하다. 자세히 보면 자신의 성격을 많이 닮은듯한 모습에 내심 반갑기도 하고...그에게 12년 동안을 알지 못했던 외로움을 선사한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알게 해준다. 기다리는 마음, 걱정되는 마음을 선물한다. 가족이라는 의미를 자꾸 생각키우게 한다.

이탈리아 구두. 딸이 혼자이다시피 살던 집은 캠핑카. 별의별 친구들을 아는 가운데 구두 장인을 소개한다. 아버지에게 딸이 선물하는 구두를 만들 사람이다. 그라서 기꺼이 소개하고 그리워만 한 아버지라서 기꺼이 선물하는거다. 장인이 구두를 제작하는 기간은 넉넉잡아 1년여를 잡는다. 90세가 넘은 장인인데 그가 발을 그리고 발의 근육과 뼈에 대해 설명을 하는데 의사라는 전직이 없었다면 도통 알아들을 수 없을 용어를 사용한다. 그리도 해박한 지식으로 그리도 시일을 요해 그리도 정직한 재료로 수공을 하니 그 구두가 어찌 편하지 않으리요. 그 구두는 오래된 친구처럼 화목한 가족처럼 편안할 밖에.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의료사고 당사자에게 연락을 취하고 분명한 사과는 없었지만, 상대방의 용서 아닌 용서앞에서 참으로 미안해진다. 진정으로 심기가 불편해진다. 그건 처음으로 그가 나타내는 마음속 배려였다. 멋진 자연을 보면 저절로 박수를 쳤는데 팔이 그리된 후로 박수를 칠 수 없기에 용서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는 그녀. 의수도 해보고...그러다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자신이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았다는 그녀. 세상이 포기한 아이들을 돌보는데...그 보금자리가 없어져야 할 상황이 되자 섬에 잠시 그 자리를 마련해줄 수 있음을 편지로 보내는데 그게 행동으로 보여진 첫번 째 배려였다. 그는 배려를 할 줄 모르는 비겁자인데 아주 뒤늦게 만난 딸의 영향이었음을.

좀더 일찍 그런 삶을 살았더라면 이라는 단서는 달고 싶지 않다. 그때서야 그가 알 수 밖에 없는 정해진 운명이었다 생각하기에. 철저한 고립과 고독속에서 살았어도 그는 외롭지 않았고 적당히 즐길 줄 알았다. 그래서 외로워 보인다는 생각이 안들었다. 딸의 등장 이후로 겉잡을 수 없이 변화한건 부정(父精)때문에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저 인간으로서 교류하는 감정이 있어야 사람다움을, 그가 아주 뒤늦게 깨달았음이라 생각한다. 아주 뒤늦은 만큼 그 열매는 너무나 치명적이었다.

전체적으로 우울하게 느껴질 법한데 난 그렇지 않았다. 담담히 읽혔다. 오히려 읽는내내 화가 좀 났다. 세상에서 저리도 비겁한 남자는 처음 본 것 같았다. 엿듣고 훔쳐보고 가 얼마나 자신없는 사람의 행동인가. 추접스럽지 않은가 말이다. 그냥 좀 밝지 않은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었다. 오래이도록 저 표지가 남을 것 같다. 그 제목과 함께. 회색 풍경이라는 말이 딱 맞을듯 싶다. 회색이 언뜻 보면 우울함의 대명사로 보일듯 하지만 누가 그 색을 사용하느냐 따라서 몹시도 세련된 색이 됨을 아는가. 그레이색이 참 멋진 색임을 리차드 기어가 알려줬다. 가을끝 언저리와 겨울 초입에서 만난 이 책이 좋다. 각기 원만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울림이 되고 치유가 된 마무리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