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을 치던 사람이 독서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양을 잃어버렸다”(讀書亡羊)는 <장자>(莊子)의 ‘변무 제8’에 나오는 내용을 제목으로 따온 이 책은 책화(冊話), 즉 ‘책에 관한 책’이다. 40여년간 책을 만든 베테랑 편집자이자 책과 인간의 운명을 탐구해온 저자가 동서고금 책들의 박물지를 세헤라자드가 밤마다 <아라비안 나이트>를 이야기해주듯 구구절절 펼쳐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같은 독서편력기가 아니라 평생 읽어온 책을 가슴속에 쌓아두었다가 오랜시간 곱씹고 되새김질해 씨줄날줄로 엮은 글은 품격있지만 난해하진 않다. 당시(唐詩)부터 수필집까지, 공자부터 보르헤스까지 인용한 책과 인물들도 실로 방대하다. 17세기 프랑스 샤를 페로의 <신데렐라>와 같은 이야기가 9세기 당나라의 수필에 나와있다는 정보도 다채롭다. 또 오래된 책갈피에 책벌레를 막기 위해 꽂아둔 은행잎, 무작위로 책장을 펼쳐 나오는 문구로 점을 치는 책점, 작가의 필명, 소리내어 책읽기와 눈으로만 읽는 묵독법 등이 시대와 시공을 초월해 현란한 인용구와 절묘한 조합으로 소개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일본작가여서 에도시대의 작가 등 발음조차 어려운 이름과 듣도 보도 못한 책들이 많이 소개되지만 어떻게 이런 사소한 이야기들을 동서양의 책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지 감탄스럽다.

깊어가는 가을밤, 컴퓨터, 휴대폰을 잠시 꺼두고 오롯한 독서의 기쁨을 누리는 것은 어떨까. 책 한권을 쓰려면 1000권의 책을 읽어야 가능하다는데 우리는 책 한권을 통해 1000권의 책과 그들이 소개하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책을 읽느라 양을 잃거나 약속을 잊을진 몰라도 책은 제 정신을 찾게 하고 참된 나를 만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