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죽음뿐 아니라 백의종군, 원균의 패전 등 원치 않던 사건들이 잇따라 일어날 때마다 이순신은 꿈을 꿨다. 저자에 따르면 이순신의 꿈은 프로이트의 이론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독특함이 있다. “이순신의 꿈은 사회·정치적인 꿈과 가족애에 관한 꿈으로 예지력을 지니고 은폐된 정치적 욕망이 분출하는 게 특징이다.”

이순신이 태조 이성계와 닮았다는 주장도 이순신의 ‘야망’을 말하고자 함이다. “나는 준마를 타고 천천히 가고 있었다. 이는 임금의 부르심을 받아 올라갈 징조이다.” 이 꿈은 ‘벽화가 된 용을 혼자 감상하는’ 꿈과 함께 이순신의 은폐된 정치적 욕망을 상징한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국가 변란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임금과 탁상공론밖에 모르는 지배집단을 향한 분노, 그리고 최고 권력을 향한 욕망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성계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혁명을 꿈꾸고 실행했다면, 이순신은 민족과 국가에 닥친 위기 앞에 혁명의 꿈을 포기하고 나라 수호의 꿈으로 자신을 승화시켰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이순신은 “자신의 시대를 넘어서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혁명을 꿈꾸던 좌절한 혁명가”이자 “자신의 꿈을, 처절히 자기를 버리는 과정을 통해 이룬 아름다운 희생자”라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이순신은 결점투성이에 겁쟁이, 게다가 이기적이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아파하며 고뇌한다.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지만 자신의 시대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머뭇거리지 않고 실행한 비범한 사람이기도 했다.

꿈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이순신이 직접 친 점도 주목 대상이다. 이순신의 ‘척자점’은 나무 막대인 윤목을 던져 괘를 만들고 길흉을 확인하는 점이다. 전투의 승패와 자신의 운명에 관해서, 또 고향에 남겨둔 아내와 아들 때문에, 어떤 때는 자신을 믿고 지지했던 유성룡이 아플 때도 점을 쳤다. “다른 사람들처럼 출세와 재산 증식을 위해 치던 점이 아니었다. 장수의 점이었고, 남편과 아버지의 점이었다. 또 절제를 미덕으로 하는 선비의 점이었다.”

간밤의 꿈을 곱씹는 것도 모자라 점까지 치는 이순신의 모습에서 순수함이 느껴진다. 그만큼 절박했으리라. 가족을 걱정하고 백성과 나라의 앞날을 고민하던 ‘인간’ 이순신은 그렇게 ‘영웅’이 됐다. 그래서 그의 꿈은 “현실의 축소판이자 미래의 청사진”이다. 구제역이 창궐하는 등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다. 청와대를 등지고 서울 한복판을 내려보고 있는 이순신 동상을 다시 보게 한다. 요즘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