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내용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 늘 변화되어 가듯이 정의 역시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단 한 명의 병사를 구하기 위해 다수의 특공대원을 희생할 수도 있다는 논리와,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 소수가 희생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가 있을 때 이는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대구가톨릭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저자가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집필한 철학서다. “인간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학문이 철학이며, 올바른 철학은 자연과 사회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결과를 토대로 해야 한다”는 저자는 생철학, 실존주의, 실용주의, 실증주의, 프랑크푸르트학파, 신프로이트주의, 마르크스주의 등의 인간관을 검토한다. 그러면서 추상적이고 신비적이며 관념론적인 인간 이해 대신 유물론적 인간 이해를 강조한다.

그는 자유와 정의에 대해 ‘누구의 자유와 정의인가’를 묻는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를 지배해온 모든 계급은 항상 자유와 정의를 실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고 공언했으나, 역사는 이들의 주장이 기득권을 유지하고 지배 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속임수라는 사실을 드러냈다”는 것. 자유와 정의의 실현에서 가장 큰 오류는 특정 계급·계층의 자유와 정의를 ‘보편’으로 호도해온 것이라는 뜻이다.

저자에 따르면 모든 정의와 도덕에는 인간의 욕구와 소원이 표현되며 이런 욕구 가운데서도 의식주와 연관되는 물질생활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정의와 도덕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고 사회발전에 부응해 나타나는 산물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자유주의 휴머니즘이라는 서구 제국주의의 이해관계가 담긴 철학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저자는 비판한다. 나아가 “인류 평화와 휴머니즘의 실현은 서구 중심의 역사의식을 벗어날 때 가능하다”면서 “한국의 현실을 반영한 진보 철학이 오늘날 나타나는 잘못된 정의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