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가 이기영씨는 지난 1년 동안 아무도 찾지 않는 텅 빈 가마터를 찾았다. 전남 영암군 구림리의 가마터를 시작으로 진안·고창·영암·해남·서산·고양·용인 등 북한에 위치한 두 곳을 제외한 전국 20개의 가마터를 돌며 콩밭, 과수원, 공동묘지, 골프장, 배추밭에서 청자의 흔적을 좇았다. 그곳에서 그가 마주한 것은 완전한 형태를 유지한 청자가 아닌 버려진 청자의 사금파리다. 부풀어 터져버린 것, 주저앉고 찌그러진 것, 받침돌에 굽이 눌어붙은 것…. 불완전한 사금파리 조각을 모아 고려청자가 탄생하던 시기의 풍경을 복원해냈다. <나, 깨진 청자를 품다>는 가마터 순례기이자 저자가 상상력을 동원해 재구성한 고려청자 초기 발전사다.

“천년 전 도공들에게 버림받고, 현대에는 유물 발굴팀에 버림받은 사금파리는 가마의 비밀을 간직한 진짜 유물입니다. 그 조각들이 버려진 이유를 추적하다 보면 초기 청자 시대의 제조법, 기술적 한계, 도공들의 고민을 발견할 수 있어요. 박물관에 있는 청자들은 너무 완벽해 그런 한계나 고민을 읽어낼 수 없지요.”

저자는 학술적 엄밀함 대신 자유로운 상상력을 동원해 고려청자가 만들어지던 시기를 생생한 이야기로 만들어낸다. 신라 말에서 고려 초로 이어지던 격동의 시기, 호족들에 의해 가마터가 만들어지고 정치적·경제적 목적에 의해 청자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해상왕 장보고는 ‘장보고 브랜드’의 청자를 생산해 귀족들을 상대로 판매할 계획으로 영암 구림 지역에 가마터를 만들지만, 안타깝게도 그 성과를 보지 못하고 부하 염장에게 살해됐고, 충남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 청자 가마터의 주인은 고려를 창건한 왕건의 측근이자 고려 2대왕 혜종의 후견인이었던 박술희였다고 추정한다.

저자는 “학자들의 많은 논문은 당시 가마터가 호족 소유였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지만 이를 증명할 수 있는 문서가 없다”며 “하지만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추정해 보니 가마터가 전혀 다른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씨는 잘나가던 경제학자에서 돌연 도예가로 변신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도자기를 우연히 접한 순간 정신적 평화와 만족감을 느꼈어요. 그걸 계기로 평생 업으로 생각했던 경제학을 버리고 도자기를 선택했죠. 도자기는 우리 문화의 원형질인데 외국과 달리 생활에서 잊혀지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책에서는 도자기를 향한 그의 지극한 사랑과 도자기를 통해 자아를 찾아나서는 저자의 내면의 행방도 함께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