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살아 숨 쉬는 생생한 공간

 

 

 

한때는 예술학부의 전공생이었다. 인문학부로 넘어오기 전까지는 나름대로 예술을 한다며 어쭙잖은 예술가 흉내를 내고 다니기도 했다. 결국 나는 예술학도의 결과물을 보지 못하고 중도하차 했지만 지금도 내 가슴속에는 그때의 낭만이 남아있다. 물감 묻은 앞치마를 두르고 예술가 흉내를 내고 다니던 나의 20살 시절을.

 

그리하여 나는 여전히 ‘예술’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20살 때의 추억이 떠오르면서 내 마음은 다시 예술가 흉내를 내고 다니던 시절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내가 굉장히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것처럼 착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예술과 관련된 서적이나 미술 전시회 등 문화생활에 대한 습관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야 내 안에 어설픈 예술가 흉내를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철학의 눈으로 본 현대예술’이란 책을 만났다. 철학이란 단어도 좋고 예술이라는 단어도 좋았다. 두 가지 단어가 함께 들어있으니 더없이 좋았다. 그게 내가 이 책을 선택한 단순한 이유다. 이 책은 한국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철학을 전공한 저자가 예술이 존재하는 다양한 공간에 대한 기록을 모아놓은 책이다.

 

저자는 예술이라는 통합적 단어 안에 포함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장르의 예술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은 꽤 다양하다. 앤디 워홀 미술관, 뉴욕 현대 미술관, 시카고 현대 미술관, 토론토 온타리오 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 등등. 저자의 시선이 안 닿는 공간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뿐만 아니라 공연 예술과 축제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버펄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블러섬 페스티벌, 태양의 서커스, 시카고 조프리 발레단 등등. 공연 예술이 살아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저자의 시선이 향한다. 그리고 그 대상에 대한 애정을 쏟아낸다. 그가 바라보고 느끼고 생각한 모든 것들은 바로 예술에 대한 저자의 사랑이나 마찬가지다.

 

저자는 예술이 살아 숨 쉬는 다양한 공간을 직접 다니며 자신이 체험한 경험들과 본 것들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다양한 예술의 현장을 보여주고 그 예술 장르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리고 저자는 철학 전공자의 모습도 잃지 않아 책 속에서 철학적인 질문도 끊임없이 풀어놓는다. 또한 예술의 세계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을 놓치지 않는다. 우리의 삶 속에서 과연 이러한 예술과 어떻게 융화되어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자기 자신과 현대의 삶에 대한 성찰도 마땅히 받아들이면서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든다.

 

여전히 내 안에는 예술가에 대한 낭만과 동경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러나 나와는 직접 손에 닿을 수 없는 거리를 유지한다. 그리하여 나는 늘 그것을 바라만 본다. 때로는 연민으로 때로는 사랑으로 때로는 그리움으로. 철학의 눈으로 본 현대예술은 내게 또 다른 예술의 낭만을 불러일으켰다. 저자가 보고 경험한 모든 예술적 공간에 대한 새로운 동경이 생겼다. 나도 그가 보고 겪은 것을 공유하고 싶다는, 직접 가서 보고 느끼고 체험하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 그러나 당분간 현실의 벽 앞에 부딪쳐 그저 마음속에 생긴 동경을 바라만 볼 것이다. 마음이 좀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게 그러한 자극을 주는 이 책, 참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