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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참 잔잔하며서도 따스하게 마음을 녹였던 소설이었어요.

육아로 지칠 때 잠시 나마 머리에 청량감을 주었던, 지금도 제 책장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또 읽어야지 하는 책 무리들 속에 꽂혀 있답니다. ^^

<잠옷을 입으렴>은 전작인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었는데,

정말 많이 다릅니다. 전작이 잔잔한 로맨스물이었다면 이 책은 성장소설이랍니다.

제 또래라면 공감하고 어쩌면 분주한 일상을 사느라 그 동안 닫혀 있었던 추억 상자의 뚜껑을

열리게 하는 그런 성장 소설입니다.

주인공 둘령과 수안의 우정과 사랑의 이야기, 현재와 과거의 기억을 오고 가면서 전개 되는 이야기는

때로는 추억에 잠기게 하고, 때로는 미스테리한 궁금등으로 앞장으로 다시 되돌아가게 만듭니다.

복선처럼 둘령과 수안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면서,

소설 후반으로 갈수록 점차 예견되는 하나의 사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인 산호와 둘령의 이야기가 베일을 벗습니다.

왜 둘령은 자신의 잠옷도 아닌 잠옷을 손으로 지어야만 했을까? 누구를 주려고,

왜 책 제목이 잠옷이 들어 갔을까? 왜 둘령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함께 하는 사람들과 지금도 살고 있을까?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수안을 잊을 수 없고, 평안한 잠을 함께할 고운 잠옷을 주고 싶었던 둘령의 마음이

슬프더라구요.

유년의 어쩌면 행복했던, 평온했던 시간들은 늘 계속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세상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 속에 휘말려들면서 그런 평안함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듯 싶어요.

둘령과 수안의 유년과 청소년기도 그랬고, 저 또한 성장하면서 어려움들이 있었으니까요.

대체로 잘 겪고 넘어가지만 특히나 심적으로 연약했던 수안은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어쩌면 스스로도 언제까지 둘령을 의지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겠지만,

그것을 실제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감당하기 힘들때, 그 때 내가 어떻게 했었더라면 하는 가정의 상황을

생각해 보곤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을 뿐더러, 혹 같은 상황이었더라도,

때론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적인 어쩔 수 없는 거스를 수 없는 그런 이유가 있을 때도 있습니다.

둘령이 겪었던 일들이 둘령에게는 어쩌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부모로부터 떨어져서 외갓집 이모집에 얹혀 살면서 일찍 조숙해지고, 혼자 자신을 책임져야 한다고 느꼈을 때,

이제는 수안과 떨어져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읽으면서 눈물이 핑 돌고 눈물이 흘러 내립니다. 둘령의 이모부, 이모, 외할머니, 먁내 이모, 율이 외삼촌,

누구에게나 각자 자신의 인생의 아픔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감당하고 겪어내고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에서

저의 부모님이 할머니의 모습이 많이 겹쳐 왔어요, 특히 이제는 계시지 않은 할머니, 고등학교 때 객지에

나와 학교를 다닐때 까지 함께 해 주시고, 도시락을 싸 주셨던 그 할머니, 작년에 돌아가신 그 할머니,

마지막까지 편안하지 지내지 못하고 가신 그 모습이 떠오릅니다. 유년시절 내내 그리고 커서도 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던 할머니인데, 인생은 변합니다.

책을 읽고 나니 잊었던 저의 유년시절과 사춘기 그리고 고등학교 때의 그 긴장감이 모락모락 생각납니다.

주인공의 나이가 지금 딱 저의 나이더라구요. 그래서인지 둘녕과 수안의 이야기가 더 마음으로 이해가 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집이 너무 읽고 싶어서 부모님께 처음으로 손을 내밀었던 기억, 이야기를 한 구절 한 구절 외워서

혼자에게 스토리텔링하면서 즐겼던 기억들, 비록 수안만큼은 아니었지만 제게도 책을 읽고 끄적끄적 무엇인가를

써 갔던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둘령의 인생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제 인생의 반을 향해 달려 가는 저의 과거와 지금을 돌아 보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아요.

읽고 나니 읽는내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 조마 조마 했던 마음이 오히려 담담해 집니다.

그리고 수안이 오랜 친구 미주와 충하를 만나듯 예전 친구들을 마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