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을 끝낸 뒤, 따사로운 햇살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매서운 추위가 가시지 않은 어느 날, 드디어 그녀를 만났다. 얼굴 사진만 보고서 8등신의 늘씬한 미인일 것이라 생각했던 그녀는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키가 자그마했다. 품에 꼭 안아주고 싶은 몸집, 눈을 감고 한 번 만져보고 싶은 검고 긴 생머리, 들판에 서 있는 해바라기를 연상시키는 동글고 환한 미소. 아샤 미로의 첫 인상은 매우 강렬했다.
스페인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을 때 왠지 마음을 끄는 표지 때문에 집에 데려 왔다가 밤을 새워 단숨에 읽어 내려갔던 책, 누가 봤더라면 주책없다고 했을 정도로 아예 휴지통을 옆에 끼고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읽을 수밖에 없던 그 책. 너무 좋아서 혼자만 간직하고 싶으면서도 어떻게든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 있는데 아샤의 이야기가 그랬다. 그래서 직접 출판사를 찾아가 내가 직접 번역을 해 한국에 소개하고 싶다고 자청하기까지 했다. 처음 해본 번역이라 나름대로 고충이 많은 작업이었지만 그녀를 만나고 나니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하늘이 허락하지 않은 생명을 얻어 소중하게 키워 주신 부모님, 가혹한 현실 때문에 어린 피붙이를 떼어 놓아야 했던 아버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바람처럼 살다간 친어머니, 묘한 운명의 장난으로 어린 나이에 혼자 남겨져 살아야 했던 언니와 강렬한 소망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꾸게 된 어린 아샤, 그리고 수많은 인도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간절한 바람과 의지가 있다면 그 어떤 일도 뛰어 넘을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노라고 또박또박 말하던 아샤.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는 내내 그녀의 존재, 그녀의 용기, 그녀의 진심이 너무나 고마워 목이 메었다.
긴 머리를 폴폴 날리며 걸어가는 아샤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제 곧 한국어로 선을 보일 그녀의 책을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해졌다. 스페인의 태양 같은 열정과 인도의 대지 같은 평온함을 함께 지닌 그녀가 전하는 특별한 감동이 어서 빨리 한국 독자들의 가슴에 가 닿을 수 있길 기도해 본다.
글 : 손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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