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서 십년전부터 약국을 그만두고 어장을 경영하고 있었으나

이 고장사람들은 여전히 성수영감을 김약국이라고 불렀다.

그에게는 딸 다섯형제가 있었다. 첫 아들을 잃은후 한실댁은 연달

아 딸만 낳은 것이다.

큰딸 용숙은 열일곱 때 출가를 시켰으나 과부가 되었고 지금 나이

가 스물네살이다. 둘째가 용빈이, 셋째가 열아홉살 용란이다. 넷째

는 용옥이, 막내가 열두살 용혜다.

한실댁은 자손 귀한 집에 와서 아들 못 낳는 것을 철천지 한을 삼

고 있었다. 그는 작은댁이라도 얻어소 자손을 보는 것이 어떻겠느

냐고 은근히 영감에게 비쳐봤으나 김약국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셋째 용란은 머슴 한돌이를 좋아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주인잡

딸과 머슴 관계는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이 아니던가.

사랑을 나누다 김약국에 들켜 한돌이는 달아나듯 통영을 떠났고

용란은 남자구실도 못하는 마약쟁이 최연학과 떠밀려 억척스럽게

살지만  결국 개버릇 남 못주고 몇십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한돌이

와 정분을 나누다 마약쟁이 남편에게 들켜 한돌이와 한실댁(어머

니)를 죽음로 몰고 미쳐 버렸다.

김약국은 어장 일은 모두 기두 일가에게 맡기고 관리만하는 무능

한 지주이자 소청이를 첩으로 들이는 무능한 아버지다.

기두는 용란을 좋아했지만 벙어리 냉가슴 앓다가 용란의 출가로

넷째딸  용옥을 택하기는 했으나 용옥을 보듬아주지 못하는 경상도

뱃사람의 무뚝뚝함을 보이는 김약국의 충성스런 집사이자 사위다. 

기두만 바라보고 사는 용옥은 불행하게도 시아버지의 성폭행을 피

해 아이를 엎고 기두를 찾아 부산으로 떠난 길이 엇갈려 통영으로

돌아오다  배사고로 아이와 함께 비운의 죽음을 맡는다.   

 

김약국은 때때로 생각한다.

이미 무의미하게 된 애정이 뒤늦게 그의 마음을 사로 잡는 마누라

와 딸들에 대한 연민이었다. 자아속에 시름하던 타아의 인과를 발

견하고 타아를 위하여 헛되게 보낸 세월을 후회하는 것이었다.

김약국은 마음 속으로 자기의 유산을 셈해본다. 아무것도 없었다.

사랑에 도사리고 앉았던 차가운 자기 자신의 모습만이 가족들의

추억 속에 남을 것이란 생각은 더없이 슬프게 했다.

길어야 6개월 위암 선고를 받고 그렇게 생을 마감한다.

 

김약국은 고아로 자랐다. 어머니는 자살하고 아버지는 살인하고

어디로 도망갔는지 아무도 모르며, 큰딸은 과부, 영아 살해혐의로

경찰서까지 갔다오고, 용빈은 공부하느라 시집을 못간 노처녀, 집

에서 키운 머슴을 사랑한 용란은 처녀가 아니라는 험때문에 아편

쟁이 부자 아들에게 시집을 갔으며, 결국 그 아편쟁이 남편은 아내

와 그 머슴을 도끼로 찍어 죽였고 용란은 미치광이가 되었다.

넷째딸 용옥은 시아버지를 피해 남편을 찾아갔다 돌아오는 배사고

로 목숨을 잃었다.

정작 본인도 위암으로 결국은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은 안은채 천장

을 응시한채 눈도 못감고 임종을 맡는다.

장대 너머 공동묘지에 김약국을 매장한뒤 용빈은 집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용숙과 용란을 남긴채 지긋짓한 통영을 막내 용혜

와 함께 고향 통영을 쓸쓸히 떠난다. 

 

 

<김약국의 딸들>과 같은 비극이 파멸과 좌절이 종착역이 아니라

철저한 폐허 속에서도 솟아나는 생명의 싹을 발견하게 한다. 한집

안의 몰락이라는 비극을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견디고 버티게 하는 한줄

기 빛을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