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권 문화의 여성들의 삶은 왠지 억압돼 있을 거라는 선입견이 있다. 그녀들의 진짜 삶에 대해 접할 기회가 별로 없고, 안 좋은 가쉽성 이야기만 듣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차도르를 벗어버린 여성들의 수다를 그린 이 책에 흥미가 생겼다. 남성보다 제한된 자유 때문에 그늘 져 있고, 자신의 의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할 것 같다는 어두운 이미지가 있던게 사실인데 그와 정반대인 직설적이고 유쾌한 수다가 나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부모님이나 이웃, 친한 친구들에게조차 말하지 못할 것 같은 은밀한 개인사를 거리낌없이 말하는 여인들의 수다에 놀라고, 다른 문화에 대해 배울수 있어 재미있고, 문화는 달라도 여인들의 수다는 비슷하구나 싶은 동질감을 느끼며 읽었다. 이란 여성들이 생각하는 사랑,결혼, 그리고 가장 재미있는(?) 음담패설이 있는 수다 속으로 고고!

 

 

남편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사트라피 씨 라고 부르는 작가의 할머니는 우아한 모습과는 반대로 아편중독자 이다. 할머니의 다정함과 상냥함은 아편탄 조각을 넣은 차를 마신 후에야 볼수 있는데, 마시기전에는 사랑하는 손녀라도 쌀쌀맞게 대한다. 아침의 차 한잔이 할머니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다면 점심과 저녁의 차 는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 할머니를 포함해 이웃 사람, 친구들이 한데 모여 차를 마시며 가장 좋아하는 일인 토론을 가지는데 그건 바로 뒷담화 이다. "남 흉보는 일은 말이야.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거야." 라는 할머니에 말에 웃음이 나오는데, 그것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다는 걸 나도 잘 안다. 동일 인물을 흉보면 유대감도 생기고 더 친해지는 경험, 여자라면 누구나 해 봤을 것이다.

 

이란 여성들의 뒷담화엔 어떤 화제가 오를까 궁금했는데, 이거 19금 딱지가 붙을 정도로 수위가 꽤나 쎄다. 포문은 할머니가 열었는데 수다의 희생자가 된건 이미 죽은 친구로 그녀의 첫날밤 이야기였다. 할머니가 처음에 뜸을 들이니 주변 사람들이 변죽만 울리지 말고 얼른 얘기 하라고 성화다. 뜸을 들이며 기대를 한껏 높였던게 보상을 받을만큼 재미있는 이야기 였는데, 할머니는 죽은 사람 흉보는 것 같다는 말과는 달리 방탕하게 살았다는 둥 처녀가 아니었다는 둥 뒷담화의 정석을 보여준다. 그러다 마지막엔 죽은 사람을 존중해 줘야지 하며 뒤늦은 수습을 하는데, 이미 죽은 친구의 이미지는 그렇고 그렇게 되어버렸다.

 

 

이란 여성들의 연애와 결혼 풍습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됐는데, 부모가 정해준 짝과 결혼해야 하는 경우가 꽤 되는 모양이다. 코가 커서 오른편에 앉은 사람은 왼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는 파빈느도 할아버지 뻘 되는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된 사연을 들려주는데,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이야기이다. 아무리 장군이고 돈이 많다지만 그네타기를 좋아하는 어린 딸에게 강제로 결혼을 시키는 아버지가 도무지 이해가 안됐다.

 

아미네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지만 정치활동 때문에 남편이 독일로 갈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과부아닌 과부로 신혼기간을 보내야했다. 그래도 남편이 자신을 독일로 부를 날을 기다리며 참았는데, 막상 간 독일에서 배신을 당하게 된다. 정말 뻔뻔한 남편은 아내 앞에서 다른 여자와 키스를 하고 바람을 피우니 타국에서 얼마나 서럽고 힘들었을까. 배신감과 외로움에 아파하던 아미네에게도 사랑이 찾아왔지만 그 남자도 남편과 같은 부류였으니 진정한 사랑을 찾기는 참으로 힘든 것 같다. 결혼에 성공한 여자도 실패한 여자도, 결혼은 머리로 해야 한다는 여자도 마음으로 해야하는 여자도 한가지만은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남편은 아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딸의 배필을 조건보고 한 어머니는 만류하는 친척의 말을 듣지 않고 괴상한 결혼식을 치뤘다가 결국 딸에게 상처만 안겼고, 외국에서 사는 게 MTV에서 나온 것 처럼 화려할 거라며 남편을 쉽게 선택한 마지도 결혼사기를 당하게 된다. 이렇게 다양한 결혼 이야기와 더불어 은밀한 화제도 오르내리는데 굳이 적진 않겠다. 읽다가 뜨악했는데, 보수적이고 순종적일거라는 이미지가 단박에 깨져버렸다. 우리나라 아줌마들도 이런 이야기는 거의 안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떤 건 부끄럽기도 하고 어떤 건 배꼽을 잡고 웃기도 했다.

 

비밀 이야기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에게 무조건 비밀을 지키겠다고, 나 못 믿느냐하며 이야기를 재촉하는 모양새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다판의 공통된 모습 같다. 입을 연 당사자는 말할 생각으로 입을 연게 분명하지만(비밀이라면서 말을 꺼낸것 부터가 깨겠다는 거 아닌가!) 괜히 한번 빼 보고, 듣는 입장에선 어떡하든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맹세를 하며 회유한다. 그리고 말하는 이나 듣는 이나 이 비밀 이야기가 새어나갈거라는 가능성이 높다는 걸 다 알고 있다.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라, 비밀이나 쉽게 말하기 힘든 이야기가 나와야 '정화의 시간'은 더 재미있어지니 말이다.

 

 

 

그나저나 여자들의 수다에 관심이 생긴 할아버지가 어슬렁어슬렁 거실로 나오는 순간, 모든 여자들의 입은 굳게 닫혀버린다. 한순간에 불청객 취급을 받은 할아버지는 그래도 대화에 끼려고 하지만, 남편을 '존중'한다며 이름을 부르는 할머니의 강한 제지를 받게 된다. 아, 길 잃은 불쌍한 할아버지. 남자들과 '정화의 시간'을 가져보는건 어떨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