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정취가 남아있는 도쿄 니혼바시의 닌교초 거리 근처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보통의 추리 소설이라면 주인공이 형사나 탐정이고 범인의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이 주요 골격이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목격자가 있는지 탐문하고 용의자의 알리바이를 검증하며 마침내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잡으며 끝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은 목격자가 주인공 이라고 해야하나, 피해자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나선다. 아홉 개의 단편이 나오는데 첫번째는 센베이 가게 딸인 나호와 가족이 주인공이고, 두번째는 요릿집 수련생이 슈헤이가 주인공이다. 이런 식으로 단편마다 전면에 나서는 인물이 달라지는데,처음엔 피해자와 아예 관계가 없는 인물이 나오다가 갈수록 친구, 가족이 등장하며 피해자와 사건의 정체가 하나씩 밝혀진다.

 

이 책은 소소한 재미를 여러개 느낄수 있는데, 처음엔 근처 아파트에서 40대 여성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짤막한 기사만 나왔지만 점점 상세한 정보가 덧붙여지며 알아가는 재미가 생긴다. 또 한가지는 각 단편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주는 재미가 있고, 피해자와 관련이 없어 보였던 것들이 의외의 곳에서 연관되는 것이 주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각 단편들을 엮는 중요한 인물인 가가 형사의 활약도 눈에 띈다. 형사 같지 않은 캐쥬얼한 차림으로 닌교초 거리를 활보하는 그는 집요하리만치 목격자 한명한명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는다. 끈질기게, 보통 사람과는 다른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해결해가는 가가 형사는 능력도 뛰어나지만 사람의 마음을 보듬어줄줄 아는 이 였다. 자신을 이 거리의 '신참자'라 소개하는 가가 형사가 없었더라면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었을지 모른다. 보통 형사들은 미미한 정보라 생각해 대수롭게 여겼던 것을 그는 끝까지 쫒아 밝혀냈고 결국 사건 해결의 중요한 키를 얻었으니 말이다.

 

사건과 크게 관련은 없지만 곤란한 상황 때문에 거짓 알리바이를 댔을 때도, 오해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관계가 있을 때도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역할을 가가 형사가 해준다. 형사이기 때문에 사건 해결과 관계가 없는 거라면 하지 않아도 될 일도 그는 기꺼이 한다. 덕분에 각 단편마다 훈훈한 결말로 마무리된다.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 추리 소설과 사람 냄새나는 따뜻한 이야기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이 책은 분명 그러하다. 특히 가족의 의미와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하는 내용들이 많다. 겉으론 고부갈등처럼 보이지만 그녀들 나름대로의 화해 방식이 있고, 멋대로 집나간 딸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실은 용서한 무뚝뚝한 아빠 등이 그렇다. 그리고 살인사건의 피해자로만 나왔던 인물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하나둘 밝혀지며, 피해자에서 한 인간으로 보이게 된다. 그런 점이 이 책을 휴머니즘으로 가득차 보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