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가치를 주식으로 매겨 사회에 불필요한 인간이라고 판단되는 순간 퇴출시키는 사회를 그린 '폭락', 술에 취한 채 깨어난 한 남자의 처절한 생존기를 그린 '수난', 외모만으로 계급을 나눈 사회와 범죄 피해자의 복수아닌 복수를 그린 '코'까지 처음 만난 소네 케이스케의 글은 소름끼치는 두려움을 안겨줬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인간이라고 했던가. 서로 다른 내용을 다룬 단편들 이지만 그 핵심은 하나였다. 인간의 악한 마음과 행동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만드는지를,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비참하고 무가치하게 만드는지를 똑똑히 알려준다. 극단적인 사회를 배경으로 했지만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무서웠던 건 현실속의 사회도 이와 비슷한 형태를 띄기 때문이다. 이렇게 노골적이고 적나라하게 차별하진 않지만, 오히려 착한 척 하며 모두가 평등하다고 말하는 현실이 더 소름끼치도록 무섭게 느껴지는 건 나 뿐일까.

 

'폭락'의 주인공 유지는 잘 나가는 은행원으로 자꾸만 떨어지는 주식에 걱정이 한가득 이다. 그런데 이 주식이라는 게 어느 회사의 주식이 아니라 본인, 즉 유지 자신에 대한 주식이었다. 그가 속한 사회는 성인이 되는 순간 주식 상장이 되는데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주가가 상승하거나 하락하는 구조였다. 주가가 곧 그 사람의 가치인 셈이다. 누구와 일촌인지, 직업은 무엇인지, 누구와 결혼하는지에 따라 주식의 가치는 결정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반영이 됐는데 한마디로 사회에 쓸모있는 인간만이 높은 주가를 유지할수 있는 셈이다. 그걸 알고나니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벌인 치열한 신경전이 이해가 갔다. 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한 사람이 명함을 건넸는지, 한발 늦은 사람이 왜 그토록 아쉬워했는지를 말이다.

 

엘리트 그룹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를 유지하거나 더 높이기 위해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할 수 밖에 없었는데,그건 유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 자리에 올랐기에 어떻게든 유지하고 싶었다. 가난하고 무능력만 부모님처럼 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주가에 악영향을 끼치는 형과의 인연을 끊고 가난한 약혼녀와도 헤어졌다. 그렇게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인물들을 멀리하고, 꼭 필요한 인물들만 가까이 하며 주가에 신경을 썼다. 하지만 형이 문제를 일으키며 불똥이 유지에게도 튀었고 이때부터 그의 인생은 곤두박질 치기 시작한다.

 

한번의 사고는 가속도가 붙으며 그를 막다른 곳까지 몰아붙였고 재생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어버렸다. 사회가 불필요한 존재로 낙인찍는 순간 더 이상의 희망은 사라져버리는 가혹한 상황이 너무나 처참했다. 한번 실패자라는 오명을 쓰는 순간 아무도 그에게 다시 시작할수 있다며 손을 내밀지 않는다. 엘리트에서 노숙자로 떨어지는 건 쉽지만, 다시 올라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유지를 통해 알수 있다. 사람을 조건으로만 봤던 사람의 당연한 최후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인간을 가치로만 여기는 사회가 경악스러웠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유지의 인생을 비참하게 만든 사람들도 언젠가는 유지처럼 한순간의 선택으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질수 있다는 걸 말이다.

 

'수난' 엔 아침에 일어나니 빌딩과 빌딩 사이 어두운 골목에 갇혀버린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의 한 손엔 수갑이 채워져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누가 어떤 목적으로 자신을 이 곳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누군가 도와주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그의 눈 앞에 다행히도 한 여자가 나타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여자는 물과 너트만 가져다 줄 뿐 경찰에 신고하지도, 수갑을 풀어주지도 않는다. 그 여자가 자신을 가둔 걸까 라는 의문과 분노가 남자를 휘감지만 그녀에게 화를 낼수도 없다. 그 여자마저 안 온다면 물 조차 마실수 없을 테니까. 며칠후 한 남학생이 그를 발견하며 드디어 구조 되나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고,자살을 하려는 남자까지 총 3명이 그를 발견하지만 제목 그대로 수난만 당할뿐이다. 누구도 불쌍한 이 남자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만 하며 그에게서 희망을 빼앗아간다. 이 남자, 과연 탈출할수 있을까?

 

'코'는 두가지의 이야기가 교차로 나온다. 이 사회는 외모의 특징으로 계급이 나뉘는데 코가 큰 텐구는 최하층민으로 차별의 대상이고, 코가 낮은 돼지는 반대의 의미로 최상층이다. 한눈에 보이는 외모이기 때문에 성형을 하지 않으면 숨기기가 힘들었는데, 텐구를 박멸해야 할 바이러스처럼 여기며 인간 이하의 짓을 하는 모습이 강도만 덜 할 뿐 현실과 일치하는 면이 많았다. 텐구 중 한명이 범죄를 저지르면 집단 전체가 범죄자 취급을 받고, 텐구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 결국 반감만 불러일으키는 점이 말이다. 텐구 출신 모녀에게 관심을 갖는 의사의 사연과 범죄자를 쫒는 형사의 이야기가 같이 나오는데, 완전히 다른 사연인 것 같았던 두 이야기가 나중에 하나로 모아져 충격적인 결말이 완성된다. 3편의 단편 모두 읽고 나니 왜 이렇게 찝찝하고 무서운지 모르겠다. 이 작품이 첫 소설이라니, 차기작에 기대가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