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아동상담소 소장 쿠마베의 인터뷰로 시작되는데, 같이 대화를 하는 인물의 목소리는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쿠마베의 대사만 나오는데 이런 형식은 책의 마지막까지 유지된다. 쿠마베의 대사를 통해 그와 만나는 사람이 기자이고 도쿄 출신이라 것 등의 간략한 정보만 알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건 인터뷰 내용이기 때문에 기자에 대한 건 크게 궁금하지도 않고 부수적이라 여기게 됐다. 그런데 기자의 정체뿐 아니라 그냥 흘러 넘겼던 소소한 정보들이 마지막엔 의외로 큰 것이었고, 그런 부분들이 함정이었다는걸 알게된다. 마지막 이야기 전까진 너무 평범하다 느꼈는데 그나마 결말이 선방한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큰 재미를 주진 않지만 그마저도 없었다면 진짜 지루했을 것이다.

 

이 책은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 주는 재미를 추구한다기 보다는 아동폭력,폭력의 대물림과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동보호법에 대한 성토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학대당하는 아동을 구출하고 싶지만 한계가 있는 아동보호소 직원, 아이를 부모와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는 죄책감, 이 분야의 일에 전문가가 아닌 문외한이 와서 참여하는 등의 제도와 인식의 미숙함, 열정과 의무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열악한 환경 등 고치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점이 현장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사회가 이런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고 방지하지 못하니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드러낸다.

 

가정 폭력에 관한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언론은 경찰과 공무원의 미숙한 대응을 질타하기에만 급급하다. 어떤 해결책도 없이 말이다. 그렇게 비난하면 자신들은 정의를 부르짖었다는 만족감에만 휩싸일 뿐, 정작 앞장서서 고치는 사람은 없다. 현실적인 제약도 많고 인력도 충분하지 않은 현장의 목소리는 듣지 않고 무조건 가해자와 관료들의 무능함을 욕하기만 할 뿐이다.

 

책 제목의  '소녀'는 나가미네 아키로 가정폭력의 피해자로 10여년전 발생한 '살인사건'에 관련된 인물로 짐작된다. 처음부터 사건의 진행과정이 일목요연하게 풀이된게 아니라 쿠마베 소장을 필두로 나가미네 아키 가족과 연관된 사람들이 하나 둘 인터뷰를 하기 때문에 그걸 종합해나가면서 사건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는 구조이다. 아키네 가족의 이웃, 아키 엄마의 친구와 동료, 선생님, 보호소 동기 등이 등장하고 아키에게 폭력을 휘두른 새아버지의 엄마까지 인터뷰를 한다. 그 엄마의 인터뷰가 또 하나의 함정이자 중요한 대목이기도 한데, 읽다보면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어느 한 인물로 자연스레 생각된다는 점을 역이용했다.

 

폭력을 피해 목숨을 건 탈출을 벌였던 한 소녀의 인생이 너무 비극적 이었다. 사랑에 눈이 멀어, 폭력이 무서워 딸을 지켜주지 못한 아키의 엄마에 대한 원망도 많이 들었다. 엄마는 남자를 선택한 게 자신의 결정이었지만, 아키는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엄마에겐 부모로서의 책임이 절실히 요구됐고 지켜줄 의무가 있었다. 의붓 아버지 또한 학대경험이 있었지만, 여러 연구를 통해 폭력의 대물림이 입증은 되었지만 그렇다고 용서가 되진 않는다. 맞고 자랐다고 해서 모두가 폭력의 가해자가 되진 않으니 말이다. 엄마의 나약함과, 아이를 구할수 없게 만드는 제도적 한계가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이 지옥에서 구해달라는 한 소녀의 처절한 부르짖음이 마지막까지 비극으로 끝나는 것 같아서 마음을 무겁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