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라스베이거스, 인도의 찬디가르, 발음하기도 어려운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인접하지도 않고 공통점이 거의 없는 도시들 이다. 카지노와 화려한 볼거리, 돈만 있으면 천국의 맛을 볼수 있는 라스베이거스 빼고는 익숙하지 않은 도시이기도 하다. 그런 세 도시의 여행담을 엮어 책으로 낸 이유에 대해 오기사는 "이 장소들이 내게 비슷한 즐거움을 줬던 이유에서다"라고 밝힌다. 그 즐거움이 여행 자체가 주는 것도 있겠지만, 건축가 답게 건물을 보며 느끼는 감회가 더 크다는 걸 책을 보면서 잘 느낄수가 있는데 이전의 책과 비슷하게 그의 여행은 주로 건물 위주이다. 거기에 양념처럼 곁들여진 자잘한 에피소드와 감상들도 여전하다.

 

오영욱 이라는 이름보다는 오기사라는 필명이 더 익숙한 그의 책은 사진 보다는 스케치에 더 눈길이 가게 만들고, 빽빽한 감상글과 각종 정보로 어지러운 여행기와는 차별화되는 '여백의 미'가 특징적이다. 그래서 한시간도 채 안돼 책 한권을 다 읽을정도인데, 이러다보니 좀 심심하고 활자중독자 에게는 좀 허무한 책처럼 보이기도 한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누구에게나 추천해주고 싶은 대중적인 책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니까 여행책을 원하는 사람에게 주기에는 정보가 좀 빈약하고, 건축에 관심있어 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기에도 좀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냥 한가하고 여유로운 시간에 소파에 드러누워 빈둥거리다 '심심한데 책이나 가볍게 읽어볼까?'할 때 책꽂이에서 꺼내 읽으면 좋은 그런 책. 내겐 오기사의 책이 그렇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소설책은 읽기 싫고, 재밌고 유익한 여행책이 지겨워 질때(그렇다고 이 책이 재미없고 무의미한 책은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라는게 나의 개인적인 느낌이다.

 

수다스럽지도 않고, 박장대소는 아니지만 피식 웃게 만드는 유머가 있는 이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차분하다. 호들갑스럽고 부산을 떨지 않아서 좋았다. 라스베이거스라는 도시 하나만으로도 떠들썩하고 흥미 위주의 책 한권이 나올만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삶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다가도 이 책이 여행기라는 걸 잊지 않기 위함인지 여행지에서의 일화도 소개하고 오기사의 최대 관심사인 건물 이야기와 스케치도 빠지지 않는다. 세 도시 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건 '인간의 욕망과 건축물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라스베이거스 였다. 더 크고, 더 웅장하고, 더 화려하게를 외치며 몸집을 불려나가는 그 도시는 향락의 종착역같은 이미지로 박혀 있어 설레기도 하고 한편으론 두려운 감정도 들지만 한번 체험해보고 싶다. 간이 작고 소심한지라 카지노에서 일정금액 이상은 못 쓰겠지만 말이다.

 

100여년전 르코르뷔지에가 야심차게 계획한 미래도시인 찬디가르는 그에게 떨림을 준 곳이었다. 도시 전체가 르코르뷔지에 스타일의 건물로 가득 찬 걸 보며 주체할 수 없이 가슴이 떨렸다는데, 이 인도여행은 오기사에게 하나의 꿈을 생기게 했다. 모든 집들이 자신의 손으로 그려진 마을 하나를 만들고 싶다 라는 것. 만약 그게 실현된다면, 100여년이 지난 후 또 다른 누군가가 오기사의 건축물을 보며 가슴 뭉클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타지마할 을 보며 이 죽음의 궁전을 위해 희생된 많은 사람들을 생각했다는데, 나도 거대한 건축물과 유산을 보면 그런 생각이 저절로 떠올리게 된다. 만리장성의 웅장함에 감탄하는 대신, 왕의 명령때문에 죽어야했을 수많은 이들이 생각난다. 러시아의 위대함을 드러내고 싶었던 표트르대제에 의해 만들어진 신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여행기간이 백야 였다고 한다. 겨울의 추위와는 또 다른 경험을 한 셈인데, 건물도 그렇고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막상 가 보면 느낌이 다르려나. 책을 읽으니 갑자기 서울 이라는 도시를 외국인들은 어떻게 보고있을지 궁금해졌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곳이라는 광고 문구가 거짓처럼 느껴질만큼, 전통을 낡고 버려야 할 것으로 인식해 얼른 지워버리고 단조롭고 재미없는 새 건물을 뚝딱뚝딱 짓는 서울의 현재 모습을 어떤 곳으로 인식할까. 앗! 그런데 최근 오기사의 신간이 나왔다.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인데 내용을 보니 내 궁금증을 조금은 풀어줄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