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러가지 일들로 무척 우울했다. 어떤 사람들은 나한테 우울증에 걸린 게 아니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을 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나와 함께 있으면 우울함이 자신에게도 전해진다고 말했다. 우울증이라... 어떻게 하면 이 기분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몇 번 울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우울함. 이것은 지금껏 내가 경험했던 약간의 우울함과는 다른, 나름대로 심각한 수준의 것이었다.

그때 '낙서하며 이겨내는 나의 우울증'이라는 책을 만났다. 낙서라면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낙서를 하면서 우울증을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이 신빙성있게 보여져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그런데 이 책, 생각했던것과는 조금 다르다.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낙서를 제안하여 소개해준다기기 보다는 우울증에 걸린 저자가 자신의 우울증을 해소하는 내용을 낙서로 담아낸듯한 느낌이랄까? 처음에는 이게 뭔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림을 하나씩 살펴보니 재미있는 장치들도 숨어있었다.

개인적으로 우울증과 자신을 짝꿍사이로 비유하며 웨딩드레스 입은 신부와 턱시도 입은 신랑 그림으로 표현한 것,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자신만의 상표를 가지고 있다며 쇼핑카트와 마트로 표현한 것 등이 인상적이었다. 공감이 가는 부분은 '소용돌이 아래로 빨려 들어가게 하는 것'으로 거절, 세상, 죽음, 때로는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표현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조금 섬뜩했던 부분은 '네가 나를 살리지 못했구나'라는 글과 함께 엄마와 오빠를 그린 것이었다. 이 부분에서는 정말 소름이 끼쳤다.

그림으로 나타난 이 사람의 일상을 살펴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우울함은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우울증에 걸렸나봐'라고 말할 만큼의 우울한 일들을 경험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우울하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사람의 낙서는 나의 우울함을 해소시키는데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말하기 힘들 것 같지만 이 사람의 어려운 상황이 나를 정신차리게 해 준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이 사람이 우울증을 이겨내는 방법들을 여러가지로 제시하고 있지만 책의 앞부분에서 제시되었던 그녀의 심각한 우울증에 비교해볼 때 이렇게 금방 책의 내용이 전환되어 결말지어졌다는 점이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내가 이해를 잘못한 것일까? 또한 그녀의 낙서는 여러 사람들의 호응과 달리 나와는 별로 맞지 않는 듯 하다. 낙서에서조차 자유로움을 추구하지 않는 나의 딱딱한 성격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책을 통하여 한 가지 느끼게 된 점, 세상에 나정도로 힘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라는 점. 나는 '우울증에 걸렸다'라고 말하기에 너무나 부끄러울 정도로 작은 일들을 견뎌내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계기를 통해서였던지 그녀의 책을 통하여 나의 우울했던 마음이 사라지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