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드 헤어
“사이코패스 중 극소수만 교도소에 있고,
나머지 대부분의 사이코패스는 우리와 함께 정상인의 얼굴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런 사이코패스가 우리 주변에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컬럼비아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세계적인 사이코패스 전문가인 로버트 헤어 박사는 미국 뉴욕 시에만 10만 명의 사이코패스가 있으며, 캐나다까지 포함한 북아메리카 지역에만도 300만 명이 넘게 있다고 한다. 정확한 통계수치인지 의심스럽긴 하지만 100명 중 1명꼴로 사이코패스라는 것이다. 물론 이 사이코패스가 모두 연쇄살인범은 아니다. 사이코패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타인의 감정에 대한 몰이해, 즉 타인과의 감정적 소통이 불가능하고 타인의 감정 상태를 공감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내가 누군가를 공격하더라도 그가 아파하거나 고통스러워하거나 수치스러워한다는 것을 전혀 못 느끼거나, 그에 대한 죄책감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연쇄살인범뿐 아니라 일반 폭력사범이나 가정폭력사범 등도 사이코패스의 범주에 들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이 “폭력사범과 가정폭력사범도 모두 사이코패스다”라는 건 아니다. 그중에도 사이코패스가 있다는 말일 뿐이다. 헤어 교수에 의하면 일반 폭력사범의 50%, 가정폭력사범의 25% 정도가 사이코패스라고 한다.

최근 <라이프>지가 발표한 세계의 대표적 연쇄살인범에 자랑스럽게(?) 얼굴을 올린 사이코패스 유영철

사이코패스, 만들어지는 것일까, 타고나는 것일까?

그런데 이런 사이코는 과연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애초에 생겨먹길 그렇게 생겨먹은 걸까, 아니면 살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어 버린 걸까? 이번에는 심리학자나 정신과 전문의가 아니라 뇌과학자가 등장한다. 다시 말해 과거에는 극단적 행동을 보인 살인범에 대해 사회학적으로, 혹은 개인의 성장배경에 초점을 맞추어 심리학적으로 분석했다면, 이제는 뇌과학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딘가 고장이 난 게 분명해!

분명 차이는 있었다. 전두엽이 손상되었고, 공격성을 좌우하는 부분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애이드리언 레인 박사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21명의 사람들의 뇌영상을 찍어 건강한 사람들의 뇌와 비교해 보았다. 그랬더니 반사회적 인격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두뇌 회색질의 부피가 줄어들어 있었고, 뇌의 전전두 부위의 자동적 활동량이 감소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보이던 어느 소년이 혼자 러시안룰렛 놀이를 했다. 그러다 자기 머리에 총을 쐈는데, 뇌의 내측전전두피질이 손상된 것이다. 다행히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이 소년은 어떻게 되었을까? 착해졌을까? 아니다. 똑같았다. 총을 쏴 뇌손상을 입기 전 소년의 행동은 내측전전두피질이 적절하게 작동하지 않고 있었음을 보여 주며, 사고 이후에도 이상 행동이 계속되었다는 것은 이미 오작동하고 있던 내측전전두피질의 손상이 소년의 행동에 거의 혹은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비슷한 목적의 연구들의 몇몇 수행되었다. 결과는 전반적으로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의 뇌는 달랐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일반화하기는 아직 어렵다. 연구가 더 필요하기도 하고, 그런 만큼 연구와 발언에 대한 책임감도 더 크다.

사이코패스, 처벌이 가능할까?

이 정도까지 오니 사이코패스에 대한 처벌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뇌는 마음을 결정하는 물리적 실체이며, 물리세계의 규칙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다면 뇌가 내린 결정과 그에 따라 행동한 사람은 그저 물리세계의 규칙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의 범죄는 그의 잘못인가, 그의 뇌의 잘못인가?”하는 물음이 제기된 것이다. 실제로 많은 법정에서 가해자의 정신이상을 이유로 무죄 판결이 내려지거나 형이 감량되기도 한다. 여기에 뇌과학의 언어가 스며든 것이다. 일은 갈수록 복잡해졌다. 과연 나는 누구일까? 나는 나일까, 나의 뇌일까?

마이클 가자니가
“책임이라는 건 한 사람 이상이 있는 사회에서만 존재하는 인간의 구성물이고
인간 간의 상호 작용에서만 존재하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규칙이다.”

이 분야에 대한 세계적인 권위자로 캘리포니아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마이클 가자니가 교수가 있다. 그는 단지 뇌과학자 신경과학자의 틀을 벗어나서 뇌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연구하는 학자이다. 2008년 우리나라에서 열린 “월드 사이언스 포럼”에 참가하여 뇌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강연을 하기도 한 그는 뇌과학 기술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를 주로 연구하는 “신경윤리학neuroethics”이라는 분야의 창시자이기도 하고, 그래서 “뇌과학을 넘어선 뇌과학자”라는 평을 듣고 있기도 하다.

자, 이런 뇌과학자는 과연 어떻게 판단했을까? 뇌의 메커니즘에 따른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을까? 뇌는 분명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을 결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행동의 책임을 ‘뇌’에게 물을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자니가 교수에 따르면, 책임이라는 것은 뇌에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임의 문제는 사회적 선택의 문제이다. 따라서 ‘뇌의 상태’와 ‘인간됨’은 완전히 독립된 개념이고, 도덕적 책임은 뇌의 상태에서 나오지만 뇌와 동일시될 수는 없는 것이다. 책임은 뇌와 구별되는 인간에게 있다. 내 “뇌”의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인 것이다.

공감과 소통, 그리고 사회적 책임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의 마음과 처지를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 이론심리학자인 뉴욕 뉴스쿨 대학교의 니콜라스 험프리는 이를 Inner Eye라고 하였다. 이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눈을 말한다. 그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혹은 할지를 예측하거나 짐작할 줄 아는 능력이 인간의 진화를 추동했다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과 공감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인간은 무리를 지었고, 조직을 만들었고, 문명을 창조한 것이다. 공감이 안 된다면, 또한 그로 인한 소통이 없다면, 인간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문명을 만들어 오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 전부터 우리 사회에 공감 능력이 부족해지는 모습들이 자주 보인다. 상대의 감정과 처지에 대한 공감과 배려는 갈수록 찾기 힘들어졌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상대방이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주상복합건물을 지으려던 용산에서부터 하늘에서 취루비를 뿌려대던 평택까지, 그리고 전직 대통령에 대한 모멸적이고 강압적인 수사, 애도와 추모의 마음까지 불법집회로 재단하는 시청 앞의 검은 방패들까지…… 공감과 소통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뭐 상황이 이렇다면 공감이나 소통 따윈 필요 없겠지!

공감과 소통은 개인의 취향이나 특질이 아니다. 공감을 더 잘하는 사람, 소통에 더 능한 개인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느끼고 발휘해야 하는 인간됨의 조건이자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이기도 하다. 무인도에 떨어진 페덱스 직원 척 놀랜드가 아닌 다음에야,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와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비로소 진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사이코패스가 궁금해? 그럼 이런 책들은 어때?


《진단명 사이코패스: 우리 주변에 숨어 있는 이상인격자》로버트 D. 헤어 지음/ 조은경, 황정하 옮김
사이코패스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손꼽히는 헤어 박사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 심리학과 명예교수인 로버트 헤어 박사의 책으로, 25년간의 임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사이코패시의 특징과 원인, 처벌과 대책, 치료 등 사이코패스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들을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친절하게 다루고 있다.

  《윤리적 뇌: 뇌과학으로 푸는 인간 본성과 생명윤리의 딜레마》 마이클 S. 가자니가 지음 / 김효은 옮김
신경과학 연구자들뿐 아니라 철학자, 정치인, 사회학자들에게도 필독서로 자리매김한 책이다. 뇌과학 기술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를 탐구한 최초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뇌와 관련한 ‘기묘한 이야기’ 내지는 ‘뇌 활용 학습법’에만 집중되어 있는 국내의 뇌과학 관련 시장에서는 볼 수 없던 새로운 영역인 ‘신경윤리학neuroethics’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살인자들과의 인터뷰》 로버트 K. 레슬러 지음 / 손명희, 황정하 옮김
FBI 요원이었으며 범죄심리 전문가인 지은이가 살인자들의 범죄심리와 범죄 패턴을 분석한 책. 희생자의 상태, 주변 환경, 연쇄적 범죄에 따른 공통증거로 범인을 분석해내는 ’프로파일링(Profiling) 기법’을 이용해 범인을 맞추는 과정을 담았다. ’누가 살인했는가’하는 범인 잡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왜 살인했는가?’에 중점을 두어 살인범들의 심리적 상태와 그렇게 되기까지의 가족 혹은 사회 상황을 정리했다. 사례 중심으로 씌어져 쉽고 빠르게 읽힌다. 

by 에디터 정일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