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과거의 부끄러운 실수를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입에서 '아, 창피해. 내가 미쳤지. 내가 대체 왜 그랬지? 어떡해..'하는 말이 튀어나오곤 한다. 꽤 시간이 흘러서 잊을 법도 한데 그런 일들은 잊혀지지도 않고 내 머릿속에 제대로 자리를 잡고 앉아선 가끔씩 튀어나와 나를 얼굴 붉히게 만든다. 사소한 실수도 이런데, 큰 잘못 같은 것들은 더하다. 이미 지나간 일이건만, 그때 그렇게 한 게 너무나 후회되고, 죄책감이 들고, 내가 잘못해서 일이 그렇게 되어버렸단 생각에, 내가 만약 조금만 더 달랐더라면 상황이 훨씬 좋아졌을 텐데...그 사람에게 상처 주는 일도 없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면 어김없이 마음이 아려온다. 이미 과거의 일이건만, 지금 이렇게 괴로워해 봤자 아무 소용도 없건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내 마음은 아프고 힘들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4명의 주인공 역시 그렇다. 딸을 잃어버린 것이 자기 탓인 것만 같은 죄책감에 성공가도를 달리던 의사에서 스스로 노숙자가 되어 자기에게 고통을 가하는 마크, 빗속에서의 운전 중 한 아이를 치고 재력가인 아버지의 도움으로 죗값도 받지 않은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스캔들을 몰고다니는 억만장자 상속녀 앨리슨, 돈에 눈이 먼 의사의 속임수에 빠져 어머니의 진심을 믿지 않은 자신에 대한 죄책감으로 복수를 꿈꾸는 소녀 에비, 그리고 자신에게 화상을 입힌 불량배들에게 저지른 복수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마크의 친구 커너까지. 커너는 우연히 서로를 연결하는 고리를 발견하게되고, 자기 자신을 포함한 이 넷의 마음의 상처를 보듬으려 한다.

 

  이 네 명의 주인공과 나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과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특히 죄책감은 자기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아내서 더욱 벗어나기가 힘든 것 같다. 죄책감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비하하게 만들어 계속 그 고통이 커져가고 늪에 빠진 것 마냥 벗어나려고 해도 더 깊이 빠지기만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과거에 얽매여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괴로워 할 수 만은 없다.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이겨내면 영혼이 한 뼘 더 커지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이 상처라는 게,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것도 있는 반면 도저히 나 혼자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녹록치 않은 녀석도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누군가 "그건 네 잘못이 아니었어. 걱정하지마. 다 잘 될 테니까. 다 잘 될 테니까 이젠 잊어버려."(p.246) 라고 다독여 주는 것이다. 스스로 똑같은 말을 수 백 번 되뇌어도 불안했던 마음이 신기하게도 다른 누군가가 말해주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서 사람은 혼자선 절대 살아나갈 수 없는 존재인가 보다.

 

  개인적으로 네가 이 넷 중에 가장 애착이 간 사람은 커너였다. 커너는 신경정신과 의사이면서도 자신의 괴로움과 고통을 그대로 껴안고 오직 일에만 매진한다. 그리고 그 괴로움과 고통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 그의 환자들을 대한다. 그도 그의 환자들과 똑같은 약한 인간이기에, 그들의 괴로움과 고통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남부러울 것 없는 다른 의사들에 비해 탁월한 치유능력을 발휘한다. 그는 자신의 환자들을 치유하기 위해 자신의 고통을 감수해 온 것이다. 그 괴로움과 고통에 온 몸으로 마주하면서. 마음만 먹으면 그 가슴아픈 기억들을 떨쳐버릴 수 있었을 텐데, 그걸 알면서도 그저 인내해 온 것이다. 여러 환자들을 치유하기 위해 그 오랜 기간 자신의 고통을 감수해온 커너를 보면서 숭고함을 느꼈다. 작가가 전혀 의도치 않았을 거라 짐작되지만, 진정한 의사를 보는 것 같았다. 요즘 의사들 중에 과연 몇이나 '사람을 고치고 싶어서' 의사가 된 사람들이겠는가? 적어도 커너는 어릴 때부터 온 마음으로 신경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어했고 결국 그 꿈을 이루어냈고, 환자들을 보다 더 이해하고 치유하기 위해 자신의 고통을 감수하기까지 했다. 비약을 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내게는 커너가 너무나도 매력적인 인물로 느껴졌다. (게다가 작가의 묘사에 따르면 키가 훤칠하게 큰 갈색머리 인데다 늘씬함 몸에 품위있는 옷차림을 하고, 왠지 모를 불안감을 담은 어두운 시선과 찌푸린 얼굴만 아니었더라면  최신 휴고 보스 카탈로그에서 막 빠져나온 모델이라고 해도 믿길 정도라고 하니!! 완소미중년 되시겠다!)

 

  그동안 기욤 뮈소에 대한 추천도 많이 봐왔고, 특히 우리나라에서 기욤 뮈소의 인기가 대단했던 지라 기대를 많이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은 내 기대에는 못 미쳐서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의 반전(이라고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도 너무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고, 커너가 화상으로 입원했을 당시 알 수 없는 여자의 얼굴을 그리면서 편안해 진다는 부분에선 설마 나도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진부한 내용이? 라며 가슴 조마조마 했지만 결국 내가 상상한 그런 내용이 이어지면서 나의 실망은 최고 치에 다다랐다. 휴ㅠ 굳이 그런 내용을 왜 넣었을까. 오히려 흐름을 깨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 내용은 굳이 없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컸다. 게다가 마크가 모든 걸 포기할 만큼 사랑했던 딸을 죽인 범인을 너무나도 쉽게, 마음의 동요도 보이지 않고 용서하는 모습을 보고선 '어떻게 저럴 수 있지?'하는 생각만 머리에 가득했다.

 

  하지만 이 책의 결말은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결국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타인을 치유하면서 한 단계 더 성장한 그들이 최선을 다해 삶을 살고 무언가를 이루어내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들의 그런 모습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이런 매력이 수많은 독자들이 이 책에게 찬사를 보내게끔 만들었나 보다. 곱씹을수록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정체를 알 수도 없고, 결코 채워줄 수도 없는 상대의 고독을 어루어만지는 것이다.

- 크리스티앙 보뱅       -p.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