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스크로 가는 기차/프리츠 오르트만/안병률/북인더갭

곰스크가 어디인지 여기저기서 찾아보았지만 끝내 알 수 없었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독일 태생으로 2차 대전 중 전쟁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서 수감되기도 하였던 저자의 대표작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비롯한 8편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진 단편 소설집이다.

어린시절 아버지에게 그 멀고도 멋진 도시 곰스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라면서 주인공의 유일한 목표이자 운명으로 자리잡은 곰스크로 가기 위해 결혼 직후 아내와 함께 기차 여행에 나섰지만 중간 정차역에서 기차를 놓치고 그곳에서 살게 되면서,

가지고 있던 기차표는 시간이 지나 무효가 되어버렸고 오랫동안 돈을 모아 다시 떠나는 날, 온갖 노력 끝에 구입한 안락의자를 두고는 함께 가지 않겠다는 아내를 남겨두고 떠나고자 하였지만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듣고 끝내 포기하고 만다.

주인공은 결국 그 마을 학교의 선생님이 되어 정착하여 살게 된다.

병들고 늙은 전임 선생님의 말이 삶의 진실일지도 모른다.

곰스크로 가지 않고 여기에 눌러앉은 것은 바로 당신이 원한 것이었다고.

그것을 깨닫고 난 후에야 만족할 수 있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지금도 곰스크를 포기하지 않은 주인공은 멀리 기적소리가 들릴 때면 쓸쓸함을 억제하지 못한다.

이 책 속에 실려 있는 다른 소설들 역시 삶에 대한 쓸쓸한 회한으로 가득 차 있다.

저자가 보는 삶은 안개가 자욱하여 방향을 분간할 수 없는 바다와도 같다.

정확한 정착지도 모른 채 각자 다른 목적지를 가진 사람들 모두는 자신이 가려는 곳으로 이 배가 간다고 믿고 있는 <배는 북서쪽으로>에서 어디로 가든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으며,

철학자와 일곱 곡의 모차르트 변주곡>에서의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라는 말에서,

멋진 메르체데스를 타고 사업에 성공한 남자가 내일이면 시들어 버릴 야생 양귀비꽃 한 다발을 가진 젊은이를 보면서 스스로를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두 시절의 만남>에서,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드리기 위해 꺾었던 양귀비 꽃 한 송이를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무덤에 바치게 되는 <양귀비>에서도 저자의 생각은 뚜렷이 나타난다.

<럼주차>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뜨거운 럼주차 한 잔을 들고 달에게 건배를 하는 보이 엡센에 이르러서야 겨우 작은 희망의 씨앗 하나를 발견하고 안도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한 가지씩의 “곰스크”를 품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에베레스트이며 산티아고 순례길이도 할 것이고 먼 이국의 환상적인 해변이자 긴 생머리에 하얀 원피스를 입은 스무 살의 소녀이다.

그것은 해녀들이 갈망하던 ‘이어도’나 허균의 율도의 꿈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서늘한 바람 한줄기가 마음 한켠을 뻥 뚫고 지나간다.

그 바람이 몰고 온 파문은 오랫동안 가라앉지 않는다.

멀리 기적소리가 들려오는 듯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어둠 속을 서성댄다.

이루지 못했을 때에만 가장 빛나는 이름 “곰스크”,

나의 “곰스크”는 과연 어디이며 무엇이었던가?

곰스크, 기차여행, 프리츠오르트만, 이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