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키 바트만/레이철 홈스/이석호/문학동네

준봉처럼 불룩 솟은 둔부를 가진 여인이 반라의 차림으로 춤추고 노래하면서 남자들의 기형적 관음적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한 노리개로 전락하였으며

죽어서도 시신은 해부되어 뇌와 생식기를 표본 처리해 영구 보관하고, 그녀의 전신을 밀랍모형으로 만들어 많은 이가 구경토록 했다.

이것은 파시스트들이나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생체 실험을 묘사한 것이 아니다.

19세기 신사의 나라 영국과 자유, 평등, 박애의 나라 프랑스에서,

기형적으로 불룩 튀어나온 엉덩이를 가진 사르키 바트만이라는 남아공 흑인 여성을 ‘호텐토트의 비너스’란 이름을 붙여 돈을 벌기 위해서 벌인 일이다.

19세기 서구 제국주의의 이념은 계몽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볼테르와 몽테스키외, 디드로의 철학에는 한결 같이 인종주의란 유령이 자리하고 있었다.

유럽 백인의 문명성을 증명한다는 그 이념은 아프리카를 비롯한 다른 식민지의 열등성을 입증하는 야만적인 근거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이념은, 사르키 바트만의 시신을 해부하고 전시하였던 과학자들에 의해 과학적 인종주의와 우생학으로 완성되어 식민지 지배의 기초로 사용되었다.

19세기 사이비 과학인 과학적 인종주의와 우생학이 DNA 발견으로 폐기되기 전까지

홀로코스트와 아파르트헤이트로 이어져 인류사상 최악의 잔혹성을 정당화하는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하였다.

죽어서도 편안히 매장되지 못하고 자연사박물관 창고에서 묻혀 있던 사르키 바트만은 .

1994년 남아공 만델라 대통령의 송환 요구를 시작으로 다양한 노력 끝에 2002년 4월 남아공으로 공식 이양되었다.

사르키 바트만의 사후 187년 만이었다.

남아공은 “만남의 언덕”을 그녀의 최후의 안식처로 정하여 성대하게 장례를 치렀다.

저자는 19세기 제국주의 과학적 인종주의를 통렬하게 질타하면서도

사르키 바트만의 유해 송환과 장례를 계기로 그녀의 삶을 비하나 칭송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동시에 경계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아프리카는 아직도 ‘동물의 왕국’을 연상케 하는 미개한 지역일 뿐이다.

그런 시각이 19세기 영국과 프랑스인들이 가졌던 의식과 닮아 있지는 않은가?

사르키 바트만에 대해서는 EBS의 <지식채널 e>라는 프로그램에서 제작 방영된 바 있으며

연극으로 공연되기도 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할 수 있었다.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에서 나의 모든 독서는 출발하였다.

사르키 바트만은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한 번 더 확인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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